IOC 공식만찬 총괄한 김규훈 총주방장
4년에 두 번밖에 없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주최의 올림픽 귀빈만찬. 언뜻 개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재료와 호화롭게 치장된 음식이 제공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구라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재료를 쓰고 맛을 낸다고 한다. 김규훈 총주방장(왼쪽)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귀빈이 수백 명이나 참석하다보니 독특한 음식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창=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날인 8일 저녁, 강원 평창 켄싱턴호텔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주최한 만찬(IOC President‘s Dinner)이 열렸다. 이 만찬은 오랜 기간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 귀빈들과 IOC 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제 본격적인 올림픽 기간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 한정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및 각국 대통령과 왕세자, 공주, 우리나라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전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 그리고 대기업 총수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IOC가 호텔 측조차 음식 사진을 찍어 놓지 못하게 할 정도로 보안을 요구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를 기념해 정상급 귀빈들에게 제공된 만찬은 어땠을까? 맛은? 이 호텔 김규훈 총주방장(43)은 “4년에 두 번(여름, 겨울올림픽)밖에 없는 만찬이라 대단히 호화로울 것 같지만 (음식 구성을) 지극히 무난하게 해 달라는 것이 IOC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
이진구 기자
―IOC가 레시피를 6번이나 수정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스타터(starter·전채 요리)로 ‘훈제 송어와 연어’, 메인은 ‘대관령한우 스테이크’, 후식 등 3코스를 준비했죠. 식사 전 서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에 먹을 카나페(canape·한입에 먹을 수 있게 만든 작은 요리)를 6종 준비했고요. 원래 스테이크 옆에 으깬 단호박 버무린 것을 준비했는데 만찬 이틀 전에 수정을 요구해 구운 통감자로 바꿨습니다. 송어 위에도 처음에는 새싹 같은 것을 올렸는데 허브를 추가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단호박은 한국적인 느낌도 있어 괜찮을 듯한데 왜 바꿔달라고 하던가요.
―김치도 없었다고요?
“아주 한국적이고 특별한 음식을 요구할 것 같지만 사실 IOC 요구는 ‘세계 각국에서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누구나 거부감 없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죠. 사람마다 기호가 갈릴 수 있는 음식은 선호하지 않더라고요. 고기 굽기도 미디엄 레어로 거의 통일할 정도였죠. 그래서 만찬 전 6, 7일 열린 132차 IOC 총회 오찬도 뷔페로 저희가 준비했는데, 김치를 백김치만 올렸어요. 자극적인 것은 빼달라고 하더라고요. 만찬 메뉴도 아마 다른 요리사들이 봤다면 ‘이게 만찬에 나간 음식이야? 너무 뻔한 거 아냐?’라고 했을 거예요. (홍어를 냈으면 큰일 날 뻔했겠네요?) 하하하, 제 애가 아직 어려요.”
―만찬은 메뉴가 정해져 알 수 없었을 테고, 오찬 뷔페에서는 어떤 음식이 가장 인기가 많던가요.
“음…, 저희가 그릇 나가는 걸 보는데 잡채를 그렇게 많이 드시더라고요. 잡채가 건강식이기도 하잖아요. 채소도 많고…, 그래서인 것 같기도 하고…. 무난하게 간장으로 맛을 낸 요리를 좋아하시는 경향이 있었어요. 갈비도 그렇고….”
IOC 공식 만찬 메뉴.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대관령한우스테이크, 허브가 올려진 연어와 훈제 송어, 디저트.
―송어와 대관령한우를 선택한 이유가….
“송어가 제철인 데다 이 지역에서 최초로 양식에 성공해서 양식장이 이쪽에 있어요. 진부에서 송어 축제도 하고요. 연어 위에 송어를 올렸는데 둘 다 기름기가 많아 송어는 훈제로 만들었죠. 대관령한우도 이 지역 브랜드인 데다 우리 호텔도 평창에 있어서 지역에 뭔가 기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바로 옆 횡성 한우도 유명한데 혹시 두 한우의 맛 차이를 구별할 수 있나요?) 아∼, 제가 구별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요. 하하하. 수입육과 한우는 차이를 느끼지만, 같은 한우를 놓고 지역별로 구별하는 정도까지는 아직…. 맛이란 게 재료 차이도 있지만 다른 요소도 많이 작용하잖아요. 여자친구랑 먹으면 더 맛있을 테고…. (쇠도 맛있죠). 회식이면 뭘 먹어도 좀 그럴 테고….”
(인터뷰가 끝난 뒤 당시 만찬에 나왔던 메뉴를 먹어볼 수 있었다. 대관령한우 스테이크는 안심 130∼140g과 볼살 60∼70g으로 이뤄졌다. 안심은 올리브유, 허브 등을 넣고 재운 후 저온 조리했고, 볼살은 육수에 넣고 끓인 뒤 오븐에 넣어 4시간 정도 졸였다고 한다. 김 총주방장은 “볼살은 원래 좀 질기지만 푹 끓이면 굉장히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스튜(stew)로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맛은? 음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먹어본 소감을 아주 솔직히 말한다면, 설명대로 너무도 무난한 맛. 그의 동의를 얻어 표현하자면 누구나 스테이크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맛이었다.)
―맛은 그렇다 치고, 정상급 만찬이 3코스면 너무 간소한 것 같은데요.
“국내 특1급 호텔 결혼식 식사가 더 잘 나오죠. 5코스, 7코스도 있으니까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국빈 만찬 때 스태프로 일했는데 그때도 보면 식사가 아주 심플해요. 이런 귀빈들은 만찬 이후에도 계속 일정이 있으니까 식사 시간을 아주 길게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코스를 많이 넣지 않고 처음부터 3코스로 준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교도 부리지 않았어요.”
“똑같은 음식도 요리사에 따라 스테이크를 잘라 탑을 쌓는다든지, 고기 옆에 놓는 부재료에 모양을 내는 식으로 플레이팅(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 모양을 내는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지 않았죠. 수백 명이 참석하는 이런 귀빈들의 대형 연회에서는 아무래도 긴장이 되기 때문에 서빙을 하다가 실수가 나올 수 있어요. 그때 음식 모양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음식에 모양을 내지 않고 최대한 심플하게 만든 거죠.”
―셰프도 장인인데, 고심 끝에 짠 레시피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던가요.
“만약 제가 초청해 나만의 요리를 대접하는 자리라면 그랬겠지요. 하지만 이 만찬은 국제적인 행사이고, 바흐 위원장이 각국 귀빈들을 초청한 자리니까 전적으로 IOC가 원하는 맛에 맞춰줘야죠.”
―바흐 위원장 정도면 세계 각국의 진미는 다 먹어봤을 것 같은데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던가요.
“유심히 봤는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단지 좀 딱딱한 빵을 좋아하더라고요. 우리는 별로 구별을 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식사 때마다 먹는 빵이 조금씩 달라요. 아침은 크루아상, 대니시, 버터롤 같은 부드러운 것을, 점심이나 저녁은 바게트 같은 좀 딱딱한 것을 먹어요. 총회 오찬에서 제공된 바게트가 있는데 ‘이것보다 좀 더 딱딱한 것이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준비된 빵을 갖다드렸죠.”
―만찬 참석자 중에 무슬림과 채식주의자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각각 30명 정도였는데 이분들을 위한 메뉴는 따로 준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슬림을 위해서는 할랄 푸드를, 채식주의자들을 위해서는 비트루트(beetroot·빨간 무라고 불리는 채소)를 조려서 메인 요리로 제공했죠.”
―자기만의 음식이나 맛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특별히 개인적인 요구를 한 사람은 없었어요. 단지 외국인들 중에는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이 있다고 해요. 특히 새우나 랍스터 같은 갑각류에…. IOC에서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뷔페 오찬에서 아예 새우나 갑각류는 뺐어요. 여기 오대산 쪽이 나물이 유명하거든요. 산채 비빔밥도 좋고…. 그래서 처음 만찬 메뉴를 구상할 때 나물을 이용한 뭔가도 생각을 했는데 그쪽에서 안 맞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나물 맛을 알기는 할까요?) 잘 모르겠죠?”
―만찬이 끝날 때까지 가장 신경 쓰인 점은….
“맛은 당연히 좋아야 하는 것이고, 별다른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거죠. 귀빈들이 갈 때 ‘생큐’ 한마디만 해주면 더할 나위 없고요. (쉽게 말해 접대받는 자리인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나요?) 거의 없죠. 그런데 간혹 한두 명 ‘좀 짰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도 있어요. 다 만족시키는 게 맞기는 한데 입맛 차이가 또 있으니까…. 그런 경우마저 없으면 완벽한 거죠. (이번에는?) IOC에도 식음료 파트가 있어 평가하는데 거기 계신 분들이 ‘좋았다. 다 만족하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호텔로서는 굉장히 기념할 만한 행사인데 만찬 음식 사진이 없습니다.(호텔 측은 만찬 당일 제공된 메뉴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지면에 실린 사진은 인터뷰를 위해 재현한 것이다.)
“거의 막판까지 메뉴 수정이 이뤄진 데다 IOC에서 행사 전까지 비공개를 원하더라고요. 보안도 세서 만찬이 열린 홀에는 저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비표를 받은 서빙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었죠.”
―요새 TV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종이 셰프인데 거의 못 봤습니다.
“제가 뭐 벌써…, 방송국에서 전화 받은 적은 없어요. 하하하. 아직 더 배워야 할 나이이기도 하고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