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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性차별의 장벽을 뛰어넘은 용기와 분투

입력 | 2018-02-27 03:00:00


《회의에서 나나 다른 여성이 어떤 생각을 밝히거나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쥐 죽은 듯 침묵이 흘렀던 적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러다 10분쯤 지나 남자가 똑같은 말을 하면 다른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하기 일쑤였다.―정면돌파(실라 베어·알에이치코리아·2016년)》



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6∼2011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을 맡았다. 미국의 위기 극복에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명분에 기대 혈세가 투입된 구제금융을 받고도 임원들에게는 거액의 성과급을 뿌리려는 대형 은행을 압박했다. 담보권 실행을 위해 서민의 주택을 차압하려는 금융회사에 맞서 채무조정을 이끌어냈다.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법’을 이끌어낸 숨은 공신이기도 하다.

덕분에 저자는 미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월스트리트저널의 ‘월가의 영향력 있는 30인’, 포브스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 있는 여성’ 등의 리스트에 숱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저자의 분투기를 자세하게 그려낸다. 고위험 고수익 파생상품으로 몰락을 자초했던 대형 금융회사들은 물론이고 이들에 동조하며 구제금융 방안을 마련한 티머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존 듀건 당시 통화감독청장 등 규제기관 수장도 저자의 적수였다.

하지만 전쟁만큼 치열했던 금융위기 극복 과정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이 또 있다. 미 재무부 차관보를 지내고 FDIC 의장까지 맡은 저자지만 ‘여성’이어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장벽들이다. 가이트너, 듀건 등 남성 동료들은 저자를 따돌리고 그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일쑤였다. 저자가 회의석상에서 강력하게 주장을 내세우면 이를 언론에 흘리고 ‘주목을 갈구하는 공주병 환자’라고 표현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그 자리까지 오른 저자는 책 곳곳에서 여성으로서 살아남는 노하우를 내비친다. “차별받고 있는지를 절대 의식하지 마라”, “다른 여성을 북돋아 줘라”, “절대 감정에 치우치지 말라”. 남자로선 체감할 수 없는 상황들을 뛰어넘은 용기에 경외심이 든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