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최립(崔岦·1539∼1612) 선생의 ‘간이집(簡易集)’ 제1권에 실린 ‘표범 이야기(豹說)’입니다.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괜히 죄 없는 새끼 호랑이들을 때려죽이는 바람에 일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호환(虎患)이 심한 시절, 호랑이를 잡으면 상으로 벼슬까지 내리던 때이니 그 행동을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어미 호랑이입니다. 복수하겠다고 나무 잘 타는 표범까지 데리고 왔으니 이제 아전은 도망칠 곳도 없이 큰일입니다.
표범이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아전은 바지를 벗어서 두 다리를 겹쳐 하나로 접었다. 표범이 가까이 오자 아전은 재빨리 표범의 머리에 바지를 덮어씌우고는 밀어서 떨어뜨렸다. 호랑이는 사람이 떨어진 줄 알고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은 그대로 있고 표범이 죽은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나무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마침내 크게 울부짖고는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아전의 용맹함? 지혜로움? 행운? 모두 안 될 것이야 없지만 글의 제목은 ‘표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선생의 마무리는 이렇습니다. “저 표범으로 말하면, 자기 재주를 믿다가 호랑이에게 부림을 받아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는 스스로 재앙을 부른 것이라고 하겠구나(若豹負其技而使於虎, 竟爲所殺, 斯其自取之也夫).” 자신의 재주만 믿고 권력을 붙좇아 그들의 도구가 되었다가 끝내는 희생되고 마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