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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프로방스를 걷다]세잔의 길은 그때 길이 아니다

입력 | 2018-02-27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사람은 왜 걷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그럴싸한 것이 ‘우리들의 발에는 뿌리가 없기 때문’(다비드 르 브르통)이라는 것이지만, 길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도 제법 설득력 있다. 사람은 발로 길을 걷기 때문이다. ‘발이 있어서 걷는다’는 문장과 마찬가지로 ‘길이 있어서 걷는다’는 문장도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넓은 길이나 좁은 길을 걷고, 똑바른 길이나 꼬불꼬불한 길을 걷는다. 흙길이나 아스팔트길, 꽃길이나 산길을 걷는다. 길이 아닌 곳을 걸을 수는 없다. 길이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다. 길이 없는 곳을 걸었다고 하는 사람은 길이 아닌 곳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길에서 헤맬 수는 있다. 헤매었다고 해서 길 아닌 곳을 걸었다고 할 수 없다. 사막에는 길이 따로 없다. 모든 곳이 길이기 때문이다. 길이 없다는 말은 길이 너무 많다는 말과 뜻이 같다. 많은 사람들이 걸은 길이 있고 단 한 사람이 걸은 길이 있다. 오래전에 공개된 길이 있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길이 있다. 옛길이 있고 새 길이 있다.

소도시의 오래된 좁은 길들을 걸으며 나는 수천 년에 걸쳐 이 길을 걸었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을 생각한다. 길을 덮고 있는 것은 돌과 흙만이 아니다. 오는 곳과 가는 곳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고 사연들이 제각각인 사람의 발들이 포개져서 지금의 길이 되었다. 유물과 유적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길이 사람을 증거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이 고전적인 질문은 길과 사람의 사연(역사)을 하나로 보고 있다. 온 길과 갈 길을 말하는 것은 곧 그의 인생을 서술하는 것이다. 길에는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기억과 욕망과 꿈이 어우러져 있다. 그것들이 길을 이루고 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세잔의 이름이 촘촘히 박힌 길들을 만난다. 여행자들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이 도시가 좋아하는 화가를 만난다. 그가 살았던 집, 그가 생트빅투아르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같이 오르내렸던 언덕길을 걸으며 여행자들은 화가의 기억과 욕망과 꿈을 생각한다. 그의 기억과 욕망과 꿈을 자기 몸에 담으려 한다. 그 길은 세잔이 화구를 등에 지고 수없이 걸었던 길이다. 그렇지만 그 길은 그가 걸었던 것과 똑같은 길은 아니다. 여행자들은 그 길을 걸으며 세잔이 본 풍경을 본다. 그렇지만 그가 본 풍경은 세잔이 보았던 것과 똑같은 풍경은 아니다. 시간은 거리이다. 짧은 시간은 짧은 거리이고 긴 시간은 긴 거리이다. 거리는 인식과 감상에 차이를 만들어낸다. 한때 중요하던 것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한때 중요하지 않던, 그러나 나중에 중요해진 어떤 것이 달라붙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 길이 그 길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여행자들이 그가 본 것과 다른 것을 본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과거에 살았던 이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그런 순례가 의미 없다고 할 수 없다.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고, 다르지만 같은 풍경을 보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욕망하고 꿈꾸는 사람의 발들을 길이 기억하고 욕망하고 꿈꾸기 때문이다.

가령 그 여행자가 그 길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작은 수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화가는 저 산에 매혹되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한 번 그린 것으로 만족했다면 한 장만 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그리고 또 그리고 자꾸만 그렸을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산은 늘 달랐을 테니까. 산은 항상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늘 달랐을 테니까. 어제 산을 보고 그린 그림이 비록 완벽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제의 산을 그린 것이므로 그는 다시 오늘의 산을, 완벽하지 않게라도 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기억은 개별적이고 욕망도 꿈도 그럴 것이다. 그는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린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림을 여러 장 그린 것이다.

그 산은 화가로 하여금 계속 그리게 할 정도로 충분히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대단한 산, 더 영감을 주는 산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산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어 그림을 그리게 했지만 화가는 그림을 통해 이 산을 영감 넘치는 산으로 만들었다. 마치 고흐가 그린 ‘구두 한 켤레’나 ‘의자’가 그런 것처럼, 저 산도 화가의 붓에 의해 영원을 얻었다. 사물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은 작품이다.

여행객이 보는 것은 지금 거기 있는 산이지만, 동시에 화가가 그때 본 산이고, 그가 그린 그림 속의 산이고, 그리고 그 산들을 통해 기억하고 욕망하고 꿈꾸는 자기 자신의 산이다. 길은 길을 걷는 사람의 눈을 열어 풍경 속에 압축된 시간을 보게 한다. 풍경을 새롭게 하고 풍경을 보는 사람 자신을 새롭게 한다.

이승우 소설가·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