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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의 미야자키 리포트] 1인3역 양의지, “포수니까 괜찮아”

입력 | 2018-02-28 05:30:00

두산 주전포수 양의지는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기본적인 타격과 수비훈련은 물론이고 불펜포수들과 함께 투수들의 공을 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에 그는 “포수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야전사령관으로서 책임감을 드러냈다. 미야자키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야구현장에는 ‘투수는 왕족, 외야수는 귀족, 내야수는 평민, 포수는 노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포수가 힘들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다. 스프링캠프에서 포수는 시즌 때 보다 더 고되다. 투수들은 전지훈련 기간 불펜에서 서서히 투구수를 늘려간다. 포수는 다른 야수들이 타격 훈련에 집중할 때 투수를 위해 불펜에서 공을 받는다.

두산 양의지(31)는 팀의 기둥 같은 주전포수지만 미야자키 캠프에서 불펜 캐처들과 똑같이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다. 팀의 주축 포수로서 스프링캠프에서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위치지만, 공 하나하나 투수의 기를 살리기 위해 고함도 외치며 열심을 볼을 받는다. 투수의 불펜 투구가 끝나면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며 시즌을 대비한 볼 배합도 구상한다. 투수의 잘못된 습관을 빨리 발견하는 것도 불펜에서 포수의 중요한 역할이다. 양의지는 새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의 투구를 지켜 본 뒤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미세한 투구 폼 변화를 찾아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투수의 불펜 투구가 이어지는 사이 양의지는 다른 포수들과 교대로 그라운드로 뛰어가 타격 훈련을 했다. 27일 선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와 평가전에 앞서서는 경기 전 수비 훈련도 따로 소화했다.

양의지는 장타력과 정확한 타격 능력을 함께 갖춘 수준급 타자다. 당연히 타격 훈련에 욕심이 날 수 밖에 없지만 투수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헌신한다. 뛰어난 타격 성적은 곧장 높은 연봉으로 환산된다. 양의지는 올 시즌이 끝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획득한다. 개인적으로 인생 일대의 큰 기회를 앞두고 있지만 스프링캠프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나보다는 팀’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두산 양의지.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타격 훈련에만 집중할 수도 없어 속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양의지는 활짝 웃으며 “포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첫 번째는 경기에서 이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수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 포수가 할 일이다. 공을 받으며 몸으로 느끼고 또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새 외국인 투수, 젊은 투수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양의지는 타격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자 큰 울림이 있는 말을 했다. “욕심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다” 무슨 의미일까? “이것저것 욕심을 내면 안 된다. 팀에 좋은 타자들이 많다. 타석에선 찬스를 놓치지 않고 타점을 올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승이라는 큰 목표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욕심내면 안 된다. ‘홈런은 몇 개 이상, 타율은 얼마 이상’이런 목표를 세우지 않는 이유다.”

스스로 밝힌 개인성적에 대한 목표는 참 담백하다. 지난해 손가락 골절로 어려움을 겪었던 양의지는 “부상이 복귀 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올해 ‘골절’이라는 단어는 꼭 피하겠다”고 말했다. 진지한 대화 끝에 이어진 “이제 힘들어서 다른 야수들처럼 타격 훈련을 못하겠다”는 농담 속에는 포수라는 역할에 대한 강한 책임과 깊은 자부심이 느껴졌다.

미야자키(일본)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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