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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제로까지 번진 ‘신부 폭행’

입력 | 2018-02-28 03:00:00

[이주여성들 ‘외칠 수 없는 미투’]베트남 정부 “신부들 보살펴 달라”




2014년 베트남 현지 언론 뚜오이째 뉴스가 한국 내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의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룬 TV 다큐멘터리. 피해 여성은 “그들(한국 시댁 가족들)은 나를 ‘애 낳는 기계’로만 여긴다”고 증언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과거엔 내밀한 가정사의 일부로 여겨져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폭력 문제가 최근엔 국가 간 외교 사안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한국인 남성과 동남아 여성의 결혼에서 빚어지는 문제다. 별 탈 없이 화목한 가정을 꾸려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개업체를 통해 사실상 ‘매매혼’ 성격의 결혼이 이뤄지는 데다 부부간 언어·문화 차이 때문에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0년에는 당시 19세였던 베트남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온 지 7일 만에 정신병을 앓던 한국인 남편에게 구타당해 숨졌고, 지난해에는 자신을 구박한다는 이유로 베트남 출신 며느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80대 시아버지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제결혼 이슈는 한국-베트남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까지 거론된 지 오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양국 정상회담 당시 베트남 측에서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2007년 10월엔 응우옌민찌엣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이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에게 신임장을 주는 자리에서 “한국에 시집간 베트남 신부들이 잘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가정 내 문제가 외교 사안으로 번진 건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최대 가사도우미 송출국 중 하나인 필리핀은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 가사도우미들의 피해 문제를 쿠웨이트 정부에 제기하고 있다. 쿠웨이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필리핀 여성이 살해된 뒤 1년 이상 아파트 냉동고에 방치됐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인은 누구의 노예도 아니다”라며 12일 쿠웨이트에 신규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는 강수를 두었다. 필리핀 정부는 ‘쿠웨이트 내 필리핀 근로자 전원 철수’까지 경고하며 쿠웨이트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 문제는 통계나 확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극소수가 일으키는 범죄라도 문제가 확산되면 피해자 국가의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분개할 수 있다”며 “소프트 외교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 정부와 협력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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