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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GM “내겐 새 애인이 생겼어”

입력 | 2018-03-01 03:00:00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를 바탕으로 개발된 GM의 완전 자율주행 시험차. 핸들이 없다. GM 제공

석동빈 기자

얼마 전 한국GM에서 만든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의 범퍼 커버를 직접 분해 조립해 보고는 조금 놀랐다. 볼트를 포함한 범퍼의 부품 조각이 50여 개로 경쟁 차종인 기아자동차 ‘모닝’의 두 배에 가까워서다. 범퍼에 붙는 그릴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고, 안개등과 주간주행등은 물론 그 부품을 잡아주는 하우징도 몰딩과 따로 분리됐다. 심지어 범퍼 아래에 붙는 고무 재질의 디플렉터는 고정하는 볼트와 너트가 10개씩 모두 20개에 이른다.

단순한 부품들인데 분해하고 조립하는 데 너무 많은 노동시간이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숙련도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스파크의 범퍼를 차에서 떼어내서 모든 부품을 분해 후 재조립하는 데 거의 60분이 걸렸다. 모닝은 30분 정도면 가능하다. 경쟁 차종보다 월등한 디자인과 진보적인 시스템이 있다면 몰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경제성이 중요한 경차의 범퍼 커버를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대부분의 부품 가격도 비싸다. 한 예로 스파크의 아웃사이드미러 커버는 2만 원이지만 모닝은 4000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모닝은 색깔별로 도색까지 돼 나와서 추가 비용도 아낄 수 있다. 한국GM의 부품 가격은 경쟁 차종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30% 이상 비싼 것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정부와 미국 GM 본사는 한국GM의 처리 문제를 놓고 복잡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GM이 만든 자동차, 그리고 GM 본사의 입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의외로 결론은 간단하다. 정책 자금으로 지금 당장은 연명을 한다고 해도 존속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쉐보레 ‘말리부’처럼 최근 GM이 내놓은 일부 차종의 품질은 수준급에 올랐지만 전체적으로는 까다롭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요구대로 신차종을 한국에서 생산하더라도 회생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 이유다.

특히 GM 본사의 메리 배라 최고경영자(CEO)나 미국 국민의 입장에서 한국GM을 바라보면 그림은 더욱 명확해진다. GM이 생존하기 위해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해외 생산시설을 축소하고 중국과 미국 시장, 그리고 미래형 자율주행 전기차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GM은 2015년 이후 호주 러시아 인도 태국 등에서 철수하거나 공장을 폐쇄했다. 이로 인해 매출과 영업이익, 주가가 모두 올라갔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1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주가는 지난해 10월 24일 46.48달러(최근 41달러 수준)로 최고점을 찍었다.

GM은 이제 ‘재래식 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자율주행 전기차와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자동차를 개발하거나 서비스를 개선할 여력도 의지도 없는 셈이다. 리쇼어링을 추진하는 미국적 상황에서 GM이 생산 비용이 높은 한국을 생산기지로 계속 활용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

그 대신 GM은 최근 2년간 자동차 공유서비스와 자율주행 관련 업체에 10조 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 이 같은 선택과 집중 전략은 미국 정부를 비롯한 주요 주주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내비건트리서치의 최근 보고서에서 GM은 자율주행 기술력 1위에 올랐다. 2년 안에 테슬라를 뛰어넘는 자율주행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GM의 관심은 최대한 인심(시장)을 잃지 않고 손해를 줄이며 한국에서 손을 떼는 것뿐이다. 정부와 KDB산업은행은 2002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당시부터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10년 전에 기자가 만났던 관련 공무원들은 “언젠가 닥칠 GM의 한국 철수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대책은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 기간 내에 철수하지 않기를 바라며 산소호흡기를 물리고 연명치료에만 급급하다 보니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국GM의 철수에 대비해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지만 투자할 주체가 없이는 공허하다. 정부가 대우차를 GM에 헐값에 넘기고 허송세월한 16년간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