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아일보]<24>김구 선생 장손 김진 광복회 자문위원장
곽낙원 여사의 귀국 소식을 전한 1925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 지면.
‘죽어도 고국강산’이란 제목으로 1925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이 기사에서 고국을 그리는 이는 곽낙원 여사(1859∼1939),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의 모친이다.
증조모와 부친의 사진이 실린 동아일보 지면을 보고 반가워한 김진 광복회 자문위원장. 그는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와 공동으로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임시정부 옥새를 찾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떠나실 때 내가 그런 말씀을 드린 바 없건만, 어머님(곽 여사)은 인천 동아일보 지국에 가서 사정을 말씀하셨다. 지국에서는 신문에 난 상하이 소식을 보고 벌써 알았다면서 경성 갈 여비와 차표를 사서 드렸고, 경성에서 다시 동아일보사를 찾아가니 역시 (고향인) 사리원까지 보내드렸다고 했다.”
부친에게 들어 당시 상황을 알고 있다는 김 위원장은 “그때 동아일보가 증조모님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임정의 사정은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는 “증조모님이 시장에서 버려진 시든 배춧잎을 주워와 죽을 끓여 겨우 연명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굶주리는 손자들을 보며 곽 여사는 ‘보육원에 보내면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손자(김신)를 수차례 보육원에 보내기도 했다. 백범 선생은 슬하에 2남 2녀를 뒀다.
친척과 지역 유지들은 고향에 돌아온 곽 여사에게 손자 학비와 등불 기름, 수학여행비 등을 지원했다. 어린 김신은 인근 일본군 공군기지로 수학여행을 떠나 파일럿의 꿈을 갖게 됐다. 2016년 별세한 김 전 장관은 결국 공군 조종사로서 최고 자리인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요즘 김 위원장은 광복 후 통일에 힘썼던 백범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민간 차원에서 북한과 교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며 “그 첫 단계로 임정에서 사용한 인장과 옥새가 북한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함께 여러 가지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임정 옥새는 6·25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북한 제작 영화 ‘위대한 품’의 장면에 옥새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현재 북한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정한다. ‘위대한 품’은 백범 선생이 김일성에게 임정 옥새와 인장을 건네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북한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넣은 장면이다. 이 옥새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남한으로 가져와 전시회를 여는 게 김 위원장의 계획이다.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 요건이 조성됐다”며 “스포츠에서 시작된 남북 교류가 민간 문화 교류까지 확산된다면 한반도 평화의 물꼬가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아일보와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백범 선생과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어두운 시기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낸 공통점이 있습니다. 광복 때처럼 민족 통일 사업에도 동아일보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