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이집트-수단 갈등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서쪽으로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베니샹굴구무즈 지역에 건설 중인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댐’ 전경. 살리니 임프레질로 홈페이지
“아프리카에서 다음 전쟁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일강 물로 인해 터질 것이다.”
이집트의 정치인이자 아프리카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의 유명한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7년 전부터 나일강 상류에 짓고 있는 초대형 수력발전 댐의 완공이 다가오면서, 이 강을 끼고 있는 에티오피아 이집트 수단 세 나라 간 오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1월 29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난 이집트와 수단, 에티오피아 3개국 정상은 이런 우려를 의식해 “(나일강 문제와 관련해)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각자의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나일강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표현대로 이집트엔 선물이었다. 이집트 인구의 약 90%인 9000만 명이 이집트 면적의 5%에 불과한 나일강 양안에 모여 살고 있다. 이집트는 지금도 담수 수요의 90% 이상, 전력 수요의 50% 이상을 나일강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가 건설 중인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댐’이 완공되면 나일강은 이집트에 선물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력발전을 위한 중력댐인 르네상스댐의 초대형 저수지에 740억 m³의 물을 채우려면 3∼12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나일강 하류로 유입되는 강물 양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나일강 수량과 유속이 감소하면 오염 물질의 농도가 높아지고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의 농경지는 피폐해진다. 모하메드 압델라티 수자원관개부 장관은 “나일강 물이 2% 줄면 20만 에이커(약 809km²)의 땅이 사라지고 100만 명이 실업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해외개발연구원의 가이 조빈스 수자원 연구원도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급격한 인구 증가와 물 부족을 동시에 겪고 있는 이집트가 담수화를 통해 인구 1억 명에게 물을 공급하려면 (정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댐 건설이 “죽고 사는 문제”인 만큼 다른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2011년 3월 ‘아랍의 봄’으로 이집트 정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나일강 상류에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댐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공사비 48억 달러(약 5조2000억 원)를 쏟아부은 르네상스댐은 올해 하반기(7∼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전력 생산량은 2월 현재 4300MW(메가와트)에 불과하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인구의 75%인 약 7500만 명이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산업단지 개발 등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60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르네상스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수단은 이집트의 눈치를 보면서도 르네상스댐 건설을 내심 반기고 있다. 국경에서 불과 15km 떨어져 있는 댐이 완공되면 저렴한 값으로 전력을 수입해올 수 있는 데다 강물의 수위 차가 줄어 홍수 위험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할라입 삼각지대의 영유권을 놓고 이집트와 분쟁 중인 수단은 르네상스댐 협상을 지렛대 삼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
나일강의 원류는 에티오피아의 청나일(Blue Nile)과 부룬디의 백나일(White Nile)에서 찾을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나일강 전체 수량(840억 m³)의 86%가 발원하지만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나일강 상류 국가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20세기 초 동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이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을 확보하려고 1929년 ‘나일강 분할조약’을 통해 나일강 독점 이용권을 이집트에 내준 탓이다. 이후 수단이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1959년 나일강 이용권을 일부 할당받았다. 그러나 당시 힘이 없던 독립국 에티오피아 등은 협상에서 배제됐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