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우 작가
―에티엔 드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는 그리스에 영토를 헌납하도록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러자 10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쳐들어간다. 페르시아군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그리스 군사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워 승리한다. 절대 열세였던 그들이 승리한 이유를 프랑스의 철학자 라 보에티는 자유에 대한 의지 때문이라 말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가 자유이다.
미래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권력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적어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을 상실할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산 안의 삶은 대가를 요구한다. 라 보에티는 이를 두고 자발적 복종이라 비판하였지만 이건 자발적 복종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강요된 굴복, 즉 굴종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굴종은 폭력을 만들어낸다. 권력을 가진 사람을 폭군으로 만든다. 굴종의 강도가 커지고 숫자가 많아질수록 폭군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폭군은 이 책이 쓰인 16세기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 모든 구석에 뿌리 깊이 존재한다.
검찰 내부로부터 불거져 문화예술계와 사회 각 분야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성추행 문제는 권력의 힘이 만들어낸 굴종의 사례다. 언젠가는 터져야 할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진실은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쉬쉬하며 감추어 두었던 추악한 사회의 단면들은 양지로 끌어내어져야 한다.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은 확보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자유는 거절에서 온다. 지금까지는 힘 있는 자들이 미래의 두려움을 무기로 힘없는 자들에게 굴종을 강요해 왔다. 이제 두려움 때문에 굴종의 길을 걷기보다 당당하게 거절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간다. 굴종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