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불랑제(왼쪽)와 릴리 불랑제 자매. 동아일보DB
이유가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 악기를 연마하는 일은 홀로 고독하게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작곡은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연주자를 섭외해야 하는 등 사회적 ‘인정 투쟁’에 더 깊이 관련되어 왔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불리한 여건을 뚫고 인정을 받은 현대의 첫 세대 여성 작곡가를 들자면 프랑스의 불랑제 자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매 가운데 동생인 릴리 불랑제(1893∼1918)는 열아홉 살에 ‘파우스트와 헬레나’로 프랑스 작곡계의 스타 산실인 ‘로마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서 토마, 비제, 마스네, 드뷔시, 샤르팡티에 등이 받았던 어마어마한 영예였습니다. 그러나 수상 기념 연주회에서 그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몸에 병마가 침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물다섯 살의 아까운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달 15일은 동생인 릴리 불랑제가 세상을 떠난 지 딱 한 세기 되는 날입니다. 만약 릴리가 수십 년 더 살았다면 자신이 계속 작곡을 해나갔을 뿐 아니라 언니 나디아가 작곡에서 손을 놓는 일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훨씬 많은 자매의 명곡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