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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현대의 첫 여성 작곡가였던 佛 불랑제 자매

입력 | 2018-03-06 03:00:00


나디아 불랑제(왼쪽)와 릴리 불랑제 자매. 동아일보DB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딛고 작가나 시인, 화가로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여성 작곡가는 매우 드뭅니다. 옛날에도 성악가는 물론이고 기악 연주자들 중에도 스타로 군림했던 여성은 꽤 많았기 때문에 여성 작곡가가 적었던 점은 특히 눈에 뜨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 악기를 연마하는 일은 홀로 고독하게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작곡은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연주자를 섭외해야 하는 등 사회적 ‘인정 투쟁’에 더 깊이 관련되어 왔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불리한 여건을 뚫고 인정을 받은 현대의 첫 세대 여성 작곡가를 들자면 프랑스의 불랑제 자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매 가운데 동생인 릴리 불랑제(1893∼1918)는 열아홉 살에 ‘파우스트와 헬레나’로 프랑스 작곡계의 스타 산실인 ‘로마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서 토마, 비제, 마스네, 드뷔시, 샤르팡티에 등이 받았던 어마어마한 영예였습니다. 그러나 수상 기념 연주회에서 그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몸에 병마가 침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물다섯 살의 아까운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섯 살 언니인 나디아 불랑제(1887∼1979)도 일찍이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동생의 작품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하찮은 것일 뿐’이라며 작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후배 양성에 전념했습니다. 현대 작곡사를 빛내는 조지 거슈윈, 에런 코플런드, 다리우스 미요, 조지 앤타일, 엘리엇 카터, 필립 글래스 등 수많은 20세기 작곡가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작곡 선생의 역할이란 각자가 개인적인 재능과 개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라며 이론서를 써달라는 부탁도 거절했습니다.

이달 15일은 동생인 릴리 불랑제가 세상을 떠난 지 딱 한 세기 되는 날입니다. 만약 릴리가 수십 년 더 살았다면 자신이 계속 작곡을 해나갔을 뿐 아니라 언니 나디아가 작곡에서 손을 놓는 일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훨씬 많은 자매의 명곡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