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가 어제 여성 정무비서의 충격적인 폭로로 사임했다. 검찰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 종교계 시민단체로 옮겨가더니 이제는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유명 시인,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배우 등의 견고한 명성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도덕적임을 자처한 종교인과 시민운동가는 낯조차 들기 어려운 수치에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미투 운동은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의 정치 생명까지 단칼에 끊었다.
그럼에도 미투 운동은 여전히 시작 단계일 뿐이다. 학교는 이미 들썩거리고 있으며 국회와 정부기관, 사법부도 비켜 가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에서도 미투가 나온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미투 운동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고루한 구별을 넘어 사회 각 분야의 권력관계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들의 억눌렸던 외침이다. 그럼으로써 남성 위주 사회가 외쳐온 정의니 자유니 평등이니 예술이니 헌신이니 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각성의 노도(怒濤)가 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포스트 가부장 사회로 가는 과정의 진통으로 보인다. 전근대적 가부장 사회의 질서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흔적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오랜 기간에 걸친 여배우 성추행도 그런 흔적이다. 미투 운동은 지난해 와인스틴을 향한 폭로로 촉발돼 세계 80여 개국에서 번져갔다. 여배우들은 그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이상 꽃처럼 받들어지는 존재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시상식을 주도했다. 미투 운동이 불러올 ‘포스트 가부장 사회’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했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미투 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남성이 직장에서 여성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꺼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은 직장 내 상하(上下)의 권력관계에서 혹은 직업 간 갑을(甲乙)의 권력관계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일하는 새로운 관계로 가는 진전이어야지, 전근대적 남녀유별(男女有別)로의 퇴행이어서는 안 된다.
내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00년 전인 1918년 영국의 여성운동가 에멀라인 팽크허스트는 경마경기에서 달리는 말 앞에 몸을 던져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을 얻어냈다. 여성은 가정에서 나와 직장으로 진출했으나 직장에서 새로운 차별을 경험했다. 그것이 미투 운동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 운동은 직장문화를 포함해 결혼과 가족제도 등에 남아 있는 구시대적 남녀관계를 바꾸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법과 제도로 담아낼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