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신고-입증 어려운 지적장애 성폭행 피해 장애여성 76% 차지… 대부분 기소조차 안된 채 종결 호의뒤 흑심 눈치못채 성폭행 노출… 장애 고려한 피해조사 시급
다행히 범행은 담임교사가 A 양을 상담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채면서 드러났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이 일사천리로 처리될 줄 알았지만 경찰도 난감했다. A 양은 범행 장소와 시간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범행 날짜를 말했다가 번복하기를 되풀이했다. 결국 경찰은 불완전한 A 양의 진술을 토대로 범행 장소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B 군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B 군은 경찰과 검찰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피해 진술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법은 지적장애인 A 양에게 너무 높은 벽이었다. 결국 B 군은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A 양의 힘겨운 투쟁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더욱이 지적장애인들은 타인이 호의를 베푸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비장애인에 비해 더 쉽게 성폭력에 노출된다. 20대 초반의 C 씨(지적장애 2급)는 지난해 같은 동네에 사는 60대 후반인 D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D 씨는 평소 C 씨에게 늘 반갑게 인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좋은 이웃집 아저씨’였다. 범행 당일 C 씨는 “우리 집에 놀러가자”는 D 씨의 말에 아무 경계심 없이 따라갔다가 변을 당했다. D 씨의 호의는 성범죄를 위한 ‘덫’이었던 셈이다.
이희정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강간은 폭행과 협박이 수반돼야 법정에서 처벌받는데, 지적장애인을 유인 및 회유해 성폭행한 경우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는 가해자의 진술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애인 성폭행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적장애인들은 육하원칙에 따라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서술하기 힘든 만큼 범죄 정황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장애인 대상 성범죄 기소율은 하락하는 추세다. 2013년 45.3%에 이르렀지만 2014년부터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법학과 교수는 “기소나 판결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주목받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며 “2011년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실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큰 화제를 모으고, 2012년 성폭력처벌법 개정으로 장애인 대상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3년에 일시적으로 기소율이 올라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성폭력 형량이 높아지면서 법원이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점이 장애인 대상 성범죄 기소율 하락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