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의 노벨상 ‘라가치상’
올해 동시 수상한 한국작가 3인

올해 라가치상을 수상한 개성 넘치는 그림책을 각각 손에 든 안효림, 정진호, 배유정 작가(왼쪽부터). 이들은 “어른에게도 그림책은 삭막한 현실에 쉼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 그림책은 판권 수출이 늘고 해외 수상 소식도 잦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라가치상 수상자들이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 모여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그림책은 아동서적이 아니다!
배 씨는 2016년 출간한 ‘나무…’로 수상했다는 소식에 눈물부터 쏟았다고 했다. 이 책은 아래로 펼쳐서 봐야 하는데 길이가 15m에 달한다. 나무, 꽃, 물고기 등이 유려한 색감으로 흘러내려 예술 작품 같다. 반달 출판사에서는 적자를 볼 각오로 만들었는데 정작 서점에서는 어디에 진열해야 할지 난감해했다고 한다. 아동서도 예술서도 아닌 것 같다는 이유였다. 회의감에 빠진 그에게 수상은 큰 힘이 됐다. 다른 작가들도 공감했다.
“작가의 자신감은 판매부수와 직결되거든요.(웃음) 책이 잘 안 팔리면 내가 잘하는 게 맞나 의기소침해지기 쉬운데 상을 받으니 격려와 확인을 받은 느낌이죠.”(정 씨)
하지만 이들은 “아이들만 읽는 책과 아이들도 보는 책은 다르다”고 말한다. 안 씨는 “5세든, 할머니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그림책”이라며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림책이 독립된 장르로서 위상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 한 번 사면 평생 보는 책
그림책은 때때로 글도, 번역도 필요 없다. 무대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등을 해 온 배 씨, 아동문학을 공부하다 그림책 작가가 된 안 씨, 건축을 전공하고 ‘그림책으로 건축 중’인 정 씨 모두 그림책의 매력으로 “그림만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의미를 찾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즐기면서 본 뒤 자신만의 메시지를 만들어내면 된다는 것. 정 씨는 “그림책은 한 번 사두면 10년, 20년을 더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권에 10만 원에 달하는 일본 작가의 그림책을 애장품 1호로 꼽았다.
최근 그림책 전문서점이 늘고 관련 동호회 활동이 활성화되는 등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 역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그림책 100배 즐기는 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다. 정 씨는 “그림책은 스스로 해석할 기회가 많으니 제목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탐색을 해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부모님’ ‘구름’이라는 주제를 던지면 그에 맞춰 골라올 수 있는 그림책이 무궁무진하단다. 안 씨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힐 때도 일단 부모 자신과 가장 소통이 잘된 책을 골라 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