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와플팬. 20세기 초에 수입돼 덕수궁 만찬용 와플을 만드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생활용품들은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에 창덕궁과 덕수궁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창덕궁에서 순종이 사용했던 물건도 있고, 덕수궁에서 고종이 사용하다 언젠가 창덕궁으로 옮겨놓은 물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사용 시기를 하나하나 확정할 수는 없다.
조사 도중 독특한 물건 하나가 연구진의 관심을 끌었다. 둥글고 넓적한 철제 팬이었다. 두 개의 철판이 붙어 있고, 겉은 매끈했지만 안쪽은 울퉁불퉁 사각형의 요철이 가득했다. 그 특이한 모습에 연구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고 보니 와플팬이었다. 와플을 만들 때 쓰는 요즘 도구와 흡사했다. 와플팬에는 ‘DAWN’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지만 아직 그 의미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고종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외교관들을 덕수궁에서 자주 접견했다. 그때 주로 서양식 음식을 제공했다. 와플은 빵과 함께 서양식 만찬의 주요 디저트였다. 현재 남아 있는 와플팬이 제과 형틀보다 수량이 훨씬 적다는 점에서 와플이 빵보다는 더 귀하게 취급된 것 같다.
와플팬은 현재 경복궁 경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제국 시기 고종과 덕수궁의 만찬 상황이 머리에 떠오른다. 외국 외교관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디저트 와플을 즐기던 고종의 모습. 고종과 와플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조사 연구해야겠지만, 정황상 이 같은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와플과 커피는 잘 어울린다.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이었기에 와플을 좋아했을 가능성은 더욱 높다. 맛도 맛이지만 벌집 같은 독특한 모양새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와플. 그 와플 인기가 100년 전 덕수궁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