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비핵화 대화]‘북-미 중매’ 나선 정의용 스토리

“좋은 결과 기대하세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 워싱턴 출국길에 올랐다. 2박 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정 실장은 백악관 등을 찾아 미국 측에 북-미 대화를 설득할 계획이다. 인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북 수석특사였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72)이 8일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 워싱턴으로 다시 출국하는 장면을 TV로 본 한 정부 관계자가 “엔도르핀이 도는 거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실장은 1박 2일간의 방북에 이어 김정은의 메시지를 들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설득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았다. 청와대 안팎에선 “트럼프와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느냐의 첫 번째 관문이 정 실장의 혀에 달렸다”는 말이 나온다.
○ 정의용, 맥매스터 집에서 와인 마시며 스킨십
정 실장이 대북 특사의 중책을 맡은 것은 방북 결과를 전달하고 미국을 설득할 적임자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 실장은 미국의 안보 컨트롤타워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려진 것 이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현안이 있을 때 곧장 전화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을 방문할 때는 정 실장이 맥매스터의 집에 들러 와인도 한잔 기울이는 사이라고 한다. 정 실장은 6일 북한에서 돌아온 직후 맥매스터 보좌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방북 결과를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정 실장은 “맥매스터와는 개인적으로 잘 통한다. 사적인 얘기도 많이 나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핵 외교 경험 부족 우려 반전시켜
정 실장과 맥매스터는 당초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안보수장 0순위가 아니었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17대 의원을 지낸 정 실장은 대선 기간 문 대통령의 외교자문단인 ‘국민아그레망’ 단장을 맡았지만 안보실장에는 서훈 원장이 0순위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 원장을 국정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 실장이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로 낙점됐다. 맥매스터도 지난해 2월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러시아 스캔들’로 낙마한 뒤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안보보좌관 후보군에도 끼지 못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추천으로 자리를 꿰찼다.
주로 군 출신이 맡았던 안보실장 자리에 외교관 출신인 정 실장이 임명되면서 처음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워싱턴 근무 경력이 있지만 주제네바대사를 지냈을 만큼 북핵이 아닌 통상이 주특기여서 한미관계를 조율하면서 북핵 해법의 큰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정 실장과 서 원장은 트럼프 행정부 고위인사들과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면담을 갖는다. 맥매스터 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회동을 가진 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장관 3명과도 만날 예정이다. 8일 오후 또는 9일 오전(현지 시간)에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도 만날 계획이다.
청와대는 북-미 대화 성사 가능성에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 관련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밝힌 합당한 조건(right condition)을 충족하고도 남는 것”이라고 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