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남미 순방에서 성추문 사제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뒤 교황청으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사과한 프란치스코 교황. 동아일보DB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최근 천주교 수원교구 한모 신부의 성추문과 관련해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주교회의 의장이 세 차례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2, 3일 경북 칠곡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묵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 수도원의 경건한 미사를 지켜봤습니다. 수도원장인 박현동 아빠스를 비롯해 회원으로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신부, 수사와 껄끄럽지만 궁금했던 성(性)과 관련한 대화도 나눴습니다.
종교계 성추문의 심각성은 드러난 것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데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대중적으로 유명인사가 아니라서 그렇지, 종교권력의 속성상 그 행태는 더 은밀하고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몇 해 전부터 목회자들을 둘러싼 추문들이 이어져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종교인에게 가중처벌 및 공소시효 적용 배제를 내용으로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경우 총무원장 선거나 큰 사찰 주지 선출을 둘러싼 잡음이 있을 때마다 입으로 옮기기 어려운 여러 성추문이 나돕니다.
2010년부터 5년간 전문직군별 강간 및 강제추행범죄 건수에 대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종교인이 442건으로 가장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 의사(371건)와 예술인(212건), 교수(110건) 순이었죠. 인구 분포를 감안하지 않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교단까지 포함돼 있다지만, 누구보다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할 종교인의 비중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종교인들에게 유독 관대한 이유는 뭘까요? 종교가 없는 이들과 신앙인들의 ‘우리 신부님, 스님, 목사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남성 성직자 중심의 수직적 관계는 성추문의 쉬운 연결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종단 내 여성의 존엄성과 그 역할입니다. 불행하게도 예외적인 몇 교단을 빼면 주요 종단에서 성 평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교계의 유리천장은 교리와 오랜 관습에 따라 그 어느 영역보다 높고 두껍습니다.
최근 발간된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산하의 한 여성 월간지는 수녀들이 고위 성직자들과 지역 교구를 위해 허드렛일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한 수녀는 “예수님의 눈에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수녀들의 삶은 그렇지 않아 큰 혼란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불교시민단체들이 지난해 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정책 제안은 성 평등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이들은 종단 산하에 ‘성평등위원회’와 ‘젠더폭력예방센터’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조계종에서 비구니는 전체 승려의 절반을 웃돌지만 권리는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국회 격인 중앙종회의 경우 전체 320석 중 10석만 할당돼 있고, 행정기관인 총무원에서도 일부 역할만 맡을 수 있습니다. 조계종 종헌이 주요 보직의 자격 조건을 ‘비구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 속에서도 청결함을 잃지 않고 관 뚜껑이 닫힐 때까지 경건하게 살아가는 종교인이 많기를 바랍니다. 종교인들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