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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인공지능 컬링 로봇 “영미! 한판 붙자”

입력 | 2018-03-09 03:00:00

고려대 등 국내 연구진 ‘컬리’ 개발




자료: 고려대


“얍얍. 헐∼헐∼. 워!”

“….”

8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센터에서 열린 경기. ‘얍’(스위핑 시작), ‘헐’(빠르게 스위핑), ‘워’(그만) 등 선수들끼리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상대팀과 달리 다른 한 팀은 경기 내내 서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소리 없이 움직이기만 했다. 이 팀의 이름은 ‘컬리(Curly)’. 컬리팀은 고려대를 중심으로 지난해 4월부터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국내 로봇기업 엔티(NT)로봇 등 8개 기관 국내 연구자 60여 명이 공동 개발한 인공지능(AI) 컬링로봇 2대로 구성돼 있다. 이 로봇들은 키 2.2m, 무게 86kg에 바퀴 3개로 이동한다.

이날 컬리는 지난해 ‘이마트배 고등부 컬링 대회’에서 우승한 춘천기계공고 컬링팀(4명)을 상대로 인간과 첫 대결을 펼쳤다. AI 컬링 소프트웨어(SW)로 실제 기계를 자율적으로 제어하는 컬링로봇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컬링은 빙판 위에서 각 엔드마다 컬링스톤을 8개씩 던져 표적(하우스) 중심에 더 가까이 밀어 넣는 팀이 점수를 얻는 경기다. 스톤이 위치하는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인 데다 스톤의 속도와 충돌 여부, 마찰력, 빙질 변화 등을 모두 고려해 투구 전략을 짜야 하는 복잡성으로 ‘빙판 위의 체스’로도 불린다.

투구로봇과 스킵로봇.


원래 컬리는 투구 전략을 짜는 AI 컬링 소프트웨어 ‘컬브레인(CurlBrain)’과 스킵로봇, 투구로봇, 빙판을 문지르는 스위핑로봇으로 구성된다. 이 중 스위핑로봇은 아직 개발 단계로 경기에는 스킵로봇과 투구로봇 2대만 참가했다. 10엔드 중 2엔드의 약식으로 진행된 이날 대결에서 컬리팀은 0-3으로 패했다. 고등부 팀은 1엔드에서는 스위핑을 했고, 2엔드에서는 컬리팀처럼 브룸(빗자루)을 사용하지 않았다.

컬리팀은 1엔드 5번째 투구에서 하우스 정중앙에 스톤을 넣는 데 성공했지만, 뒤이어 고등부 팀이 이 스톤을 완전히 하우스 밖으로 밀어내면서 전세가 뒤집혀 1점을 뺏겼다. 2엔드 역시 초반에는 중심에서 반경 1.2m인 빨간색 원 안에 컬리팀의 스톤만 2개가 들어갔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자기 팀 스톤을 밀어내는 ‘자폭’ 투구가 두 차례 발생했다. 결정타인 마지막 투구까지 가드(방어막)를 세우는 데 쓰면서 고등부 팀이 2점을 가져갔다.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빙판은 경기장 온도와 습도, 정빙 정도 등에 따라 수시로 빙질이 바뀐다. 오전에 진행된 1엔드의 연습게임에서는 1-0으로 이겼는데, 아직까지는 빙질에 맞게 적응하는 능력이 정교하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기에 참가한 고등부 팀 선수는 “로봇이 생각보다 다양한 전략을 잘 짜는 것 같다. 무섭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설상훈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올가을에 스위핑로봇까지 추가되면 성능이 향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컬리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스킵로봇은 하우스 뒤편에서 길이 45.72m, 너비 5m의 직사각형 빙판을 좌표화하고, 헤드에 달린 영상 카메라로 스톤의 위치, 투구 궤적, 현재 점수 등 경기 상황을 실시간 인식해 중앙컴퓨터로 전송한다. ‘알파고(AlphaGo)’처럼 강화학습 기반의 딥러닝(심층 기계학습) 기술이 적용된 컬브레인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3초 내에 최적의 투구 전략을 세워 투구로봇에 전달한다. 투구로봇은 이 전략에 따라 던지는 힘과 진행 방향, 스톤의 회전 방향 등을 고려해 스톤을 목표 지점까지 보낸다. 컬브레인과 스킵로봇이 국가대표 여자컬링팀 주장인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의 머리와 눈 역할을 하는 셈이다.

컬브레인 데이터베이스(DB)에는 세계컬링연맹의 2014∼2017년 국제 컬링경기 기보 1321건에 포함된 1만1000엔드의 스톤 배치 상황과 16만 번의 투구 전략 등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컬브레인 상대팀이 먼저 던진 스톤이 하우스 정중앙(티)에 위치해 있을 경우, DB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검색해 150건의 유리한 투구 위치 후보를 추출해낸다. 그리고 딥러닝 네트워크 ‘정책망’을 이용해 경기 상황에 유리한 최적의 투구 위치를 결정한다. 투구 후 결과가 나오면 경기 승률을 예측하는 ‘가치망’을 이용해 피드백 평가를 하고, 다음 투구에 반영하면서 점점 승률을 높여 나간다. 컬브레인은 지난해 11월 일본 전기통신기관(UEC)이 주최한 ‘국제 인공지능 컬링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의 가능성을 보였다. 컬브레인은 개인컴퓨터(PC) 1대로 구동된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컬리가 던지는 스톤은 하우스의 빨간색 원 안에 60∼70% 이상 들어간다. 이렇게 밀어 넣는 ‘드로’ 외에 상대팀 스톤을 쳐내는 ‘테이크아웃’ 전략에서는 성공 확률이 80∼90%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경기 중에도 2개의 스톤을 동시에 쳐내는 ‘더블 테이크아웃’을 선보였다. AI 결정에 따라 기계적인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한 덕분이다. 주행속도는 초당 0.01m 단위로, 투구 각도는 0.05도 단위로 조절이 가능하다. 초당 3.5m 속도까지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한 번에 최대 2시간 30분까지 운행 가능하다.

컬링로봇은 향후 컬링 선수들의 경기 훈련은 물론 일반인을 위한 컬링 교육, 게임 등에 활용될 전망된다. 이 교수는 “컬리를 이용한 훈련으로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도 한국 대표팀이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는 게 1차 목표”라며 “‘플로 컬링’이나 ‘스크린 컬링’ 등에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컬링로봇의 범용성을 확보해 자율 생산 로봇, 무인 이송 서비스 등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한편 평창 겨울올림픽에 이어 9일부터 열흘간 겨울패럴림픽이 개최된다. 6개 종목 중에는 휠체어컬링도 있다. 한국 대표팀은 10일 오후 2시 35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미국팀과 예선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