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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의 盤세기]권력층 성폭력, 타령으로 신랄 풍자… 1910년대 ‘미투 운동’ 주역은 광대

입력 | 2018-03-09 03:00:00

<5> 어전광대 박춘재의 ‘장대장타령’




일제강점기 경기명창이었던 박춘재 명창(왼쪽)과 2001년 공연된 그의 대표적인 재담소리 ‘장대장타령’.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미투 운동이 거셉니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조차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약자, 소수자를 상대로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탄의 대상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미투 운동의 방식이 아니라 풍자와 조롱의 방식이었습니다.

가면극이나 탈놀이의 천방지축 캐릭터인 말뚝이를 비롯해 재담극이나 재담소리에 나오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 캐릭터가 주로 권력층을 비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조롱 대상은 권력층의 성폭력, 거짓말, 이중생활 등이었습니다. 특히 어전광대 박춘재(1881∼1948)가 전래의 재담에 전통 소리를 섞어 만든 ‘장대장타령’과 ‘장님타령’에는 권력층의 성폭력을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대장타령은 1913년 일본 축음기 음반회사에서 ‘장첨사득처가’란 이름으로 처음 발표되며, 이후 ‘장대장타령’이라는 레이블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발표됩니다. 광대 박춘재가 혼자 부르거나 콤비인 문영수와 주고받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인기가 매우 많은 재담소리의 대표작입니다.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백그라운드를 동원해 벼슬을 얻은 장대장과 결혼한 무당이 남편과 약속한 대로 무속인 전력을 감추고 살다가 병에 걸린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점집을 찾게 됩니다. 이때 장님 점술가에게 성희롱과 추행을 당한 부인은 우연히 굿판에 들르는데 그만 무당 본능이 나와 굿을 하게 되고, 이를 점술가가 목격합니다. 점술가는 남편에게 이르겠다고 겁박하고 부인은 입막음의 대가로 하룻밤을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약속을 받자마자 점술가는 나처럼 남의 약점 잡아서 못된 것을 요구하거나 허장성세에 눈이 어두워 세상 속이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며 권력층의 위선을 비판합니다. 권력을 배배 꼬아 조롱하는 광대로서의 역할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장님타령은 한 여성이 병에 걸린 반려견을 위해 장님을 찾아가 점을 보면서 생긴 우스운 상황을 재담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성희롱하는 장님 면전에 대고 ‘이 양반이 미쳤나’ 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장님은 위선적인 권력층을 희화화한 캐릭터입니다.

재담소리 음반과 공연이 인기가 많았던 것은 현실정치를 꾸짖고, 권력자를 조롱하는 광대들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신분은 천한 약자였지만 광대들은 권력자의 폭력과 폭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권력층 역시 과거에는 광대의 재담을 통해 민심을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을 통해 목격된 현대판 광대(문화 예술가)들은 권력화하고 위선적인 모습뿐입니다. 오히려 미투 운동에 나선 피해자들이 용기 있는 광대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