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스캔들을 다룬 영화 ‘채퍼퀴딕’
#1. 1969년 7월 18일 오후 11시 15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채퍼퀴딕 섬. 파티에 참석했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막내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자리를 떴다. 케네디 의원의 형인 로버트 케네디 전 미국 법무장관의 선거운동원이자 비서였던 메리 코페친과 함께였다. 이후 케네디 의원은 메리 코페친을 태우고 차를 운전하다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물속으로 추락했다. 케네디 의원은 차문을 열고 나왔지만 메리 코페친은 차 속에서 숨졌다.
케네디 의원은 정신없이 뭍으로 올라온 뒤 코페친을 구하려고 수차례 물에 뛰어들었지만 기진맥진해버려 구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그는 사고현장 근처 민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다시 파티 장소로 돌아간 사실까지 밝혀졌다. 검시에서 메리 코페친의 입과 코, 치마에 혈흔이 있었다고 검찰이 문제도 제기했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케네디 의원은 ‘간접 살인’, ‘혼외 정사설’에 시달렸고, 사고 현장을 떠난 죄로 징역 2개월에 집행유예 1년, 1년간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 형의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되려던 케네디 의원의 꿈은 깨졌다.(미국과 스웨덴 합작 영화 ‘채퍼퀴딕’, 지난해 미국 상영)
#2. 1987년 5월 3일 미국 신문인 마이애미 헤럴드가 폭로성 기사를 냈다. 1988년으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게리 하트 상원의원이 젊은 여성과 불륜 관계라는 내용이었다. 하트 의원 측은 즉각 부인했다. 마이애미 헤럴드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난했고. 하트 의원의 부인까지 나서서 불륜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게리 하트 전 상원의원의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 ‘프론트러너’
최근 ‘여성 스캔들’로 몰락한 거물 정치인을 다룬 두 영화에 대한 국내 영화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논란’과 묘하게 오버랩 되고 있어서다.
●섹스 스캔들에 발목 잡힌 잠룡들
케네디 의원이나 하트 의원, 안 전 지사 모두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됐다. 케네디 의원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인 케네디가(家) 자손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암살된 두 형 때문에 동정표까지 얻을 수 있다는 민주당 내부 계산도 이런 가능성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채퍼퀴딕 스캔들’로 발목이 잡히며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안 전 지사 역시 지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잘 생긴 외모에 합리적인 좌파라는 이미지를 얻으면서 중도 진영 표를 흡수할 수 있는 차기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이번 성폭행 논란으로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좌파 성향 정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평소 여성 친화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정당이었던 만큼 혼외 스캔들이 터지자 지지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됐다.
● 부인들 반응은 엇갈려
스캔들 상대를 살펴보면 케네디 의원과 안 전 지사가 비슷한 상황이다. 케네디 의원의 경우 상대방이 형의 비서였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위계에 의한 사건 가능성이 대두됐다. 자신의 권력을 앞세워 수행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안 전 지사와 유사한 상황이다. 다만 채퍼퀴딕 스캔들은 피해자가 숨진 데다 케네디 의원 본인이 혐의를 적극 부인해 사실상 미결 사건이 됐다. 하트 의원은 모델과 가진 부적절한 관계인만큼 위계에 의한 사건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혼외관계라는 점에서는 안 전 지사 사례와 공통점이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