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南北, 5월 北-美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안에 북한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에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김정은의 ‘가능한 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해 듣고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화답했다. 남북이 4월 말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데 이어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문 대통령은 “5월 회동은 훗날 한반도 평화를 일궈낸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사실상 합의되면서 북핵·미사일 위협을 두고 가파르게 대립하던 한반도 정세는 급속하게 대화 국면으로 바뀌었다. 거친 ‘말의 전쟁’을 넘어 군사옵션과 핵 보복 위협을 하던 북-미가 본격적인 관계 정상화의 궤도에 들어서면 지구상 마지막 유산으로 남아있던 한반도의 70년 냉전체제도 무너질 것이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북-중, 북-일, 북-러 연쇄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도 전면 개편될 것으로 기대된다.
요 며칠 사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나면서 한반도 정세가 극적으로 전환된 데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 외교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7월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내놓은 이래 문 대통령의 끈질긴 대북, 대미 설득 외교가 먹힌 것이다. 대북 특사단은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 의지 표명과 핵·미사일 실험 중단 약속, 한미 연합 군사훈련 양해를 받아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의사가 분명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곧바로 수락했다.
새로운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5월까지’라는 대략의 정상회담 시간표만 나온 상태다. 그에 앞서 북-미 대화가 이뤄져 비핵화 일정과 실행 계획 같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큰 그림의 윤곽이 잡혀야 한다. 만만치 않은 과제다. 북한이 북-미 대화에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수용하면 대북제재 해제,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이 이런 요구에 얼마나 맞춰 줄지는 미지수다.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의 구체적 장소와 날짜, 의제도 정해지지 않았다. 평양일지, 워싱턴일지, 아니면 제3의 장소인 판문점이나 서울, 제주도가 될 수도 있다. 북-미 비핵화 대화가 궤도에 들어선 뒤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상호 특사 파견도 필요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중재에 따른 간접 대화만 이뤄진 상태에서 북-미가 직접 머리를 맞대다 보면 온갖 논란과 신경전이 벌어질 수 있다. 언제든 엎질러질 수도 있는 불안한 합의인 것이다.
최근의 급격한 정세 변화는 사실 과거에도 이뤄진 남북미 3자 간 역사의 압축적 전개이기도 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조명록 북한군 차수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상호 방문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도 평양 방문을 계획했지만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방북을 접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엔 남북미 3국 정상이 모여 종전(終戰)을 선언하는 방안도 추진된 바 있다. 이런 과거는 모두 미완(未完) 또는 실패의 경험이었으며, 지금의 기대도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남북미 3자 간 외교 시간표는 급가속 페달을 밟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은 끊임없이 서로의 진정성을 테스트하고 손익을 계산하며 중재자인 우리 정부를 애태울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소중하게 다뤄 나가겠다. 성실하고 신중히, 그러나 더디지 않게 진척시키겠다”고 했다. 우선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까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보다 진전된 조치를 내놓도록 설득하고, 이를 토대로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된 합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