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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사회의 억압에 맞선 페미니스트 나혜석

입력 | 2018-03-10 03:00:00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나혜석 지음·장영은 엮음/336쪽·1만2000원·민음사




1920년 4월 10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신랑신부’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 두 장이 실렸다. 경도제국대 출신 변호사 김우영과 동경여자미술학교 출신 나혜석이었다. 한국 최초의 공개 결혼청첩이었다.

나혜석(1896∼1948). 일제 시대의 화가, 작가, 여성운동가, 그리고 신여성의 아이콘. 해마다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이면 국내에서 빠지지 않고 호명되는 인물이다. 이 책은 그 나혜석의 소설과 논설, 수필, 대담을 엮고 해설을 더한 것이다. 한 편 한 편 나혜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여성 문제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임을 확인시켜준다. “아아, 남성은 평시 무사할 때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향락하면서 한 번 법률이라든가 체면이라는 형식적 속박을 받으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향락하던 자기 몸을 돌이켜 금일의 군자가 되어 점잔을 빼는 비겁자요, 횡포자가 아닌가.”

나혜석이 1934년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장’의 한 대목이다. 남편 김우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남편의 친구 최린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를 알게 된 김우영이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다. 나혜석은 남성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이혼고백장’을 쓰지만, 이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한다. 그럼에도 존재 증명을 위한 나혜석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해설을 쓴 장영은 씨는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여성이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다”고 썼다. 최근 전 세계와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거센 미투의 바람과 함께 나혜석의 믿음이 이뤄짐을 느끼는 오늘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