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대학생들의 영원한 고통인 조별과제는 최근 조의 구성 방식에서 과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구성하는 방식 대신에 요즘은 강사에게 e메일을 보내 무작위로 조를 배정해 달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온라인게임에서 멀티플레이를 위해 참가자들을 묶어내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인기 게임들은 팀플레이를 기본으로 전제하고, 플레이어들을 임의로 서버가 묶어 팀을 만들어준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시절의 팀플레이가 지인들끼리의 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게임 매체가 제공하는 방식이 게임 밖의 행동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유명한 문장 ‘미디어가 메시지다’는 기술 매체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말이다. 현대 매체들은 메시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지각변동급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미투’ 운동의 배경 중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새 매체가 보편화된 환경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집중화된 미디어들에서 드러나기 어려웠던, 드러나도 수혜적인 시선에만 머무르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SNS 시대에 본격적으로 주인의 육성을 통해 퍼져 나갈 수 있게 됐다.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말을 부연하면서 모든 매체는 감각 혹은 신체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인의 전화번호는 이제 뇌가 아닌 스마트폰이 외우며, 팟캐스트 방송은 청각 언어가 라디오와 전화를 통해 뛰어넘은 공간의 한계를 이제 방송시간마저 넘어서게 하는 확장성을 일궜다.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래서 새로 돋아난 팔 하나, 눈 하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경험 축적이며, 사회의 새 윤리의식이다. 늘어난 손으로 주먹을 쥐고 남을 때릴지, 손을 뻗어 한 번의 악수를 더 할지는 스스로 혹은 사회집단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새 신체기관을 위한 걸음마에 대한 연구와 성찰은 새 매체의 의미를 진화냐 종양이냐로 가르는 막중한 역할을 떠안는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