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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76만 명에게 세금 전자고지서 잘못 발송

입력 | 2018-03-11 14:50:00

서울시 금고 입찰 앞두고 전산 오류…103년 금고지기 독점 깨질지 주목




서울 시민 76만 명에게 잘못 발송된 세금 전자고지서.

# 3월 6일 오전 5시 33분, 직장인 K씨는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서울시 ETAX’, 제목은 ‘서울시 2018 03월 [구일반]도로사용료정기분 전자고지 안내’였다. 도로 사용료 12만8000여 원을 납부하라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무슨 세금인지 의아해하던 K씨는 이내 한 가지 잘못된 점을 발견했다. e메일 수신인 칸에 K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 e메일 주소는 K씨의 것이 맞았다. 다음 날 오전 4시 42분 무렵 K씨는 또 다른 e메일을 받았다. 우리은행이 보낸 서울시 ETAX 전산 오류에 관한 사과 내용이었다. 하루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시 금고를 관리하는 우리은행이 서울 시민 76만 명에게 엉뚱한 세금 전자고지서를 발송하는 전산 사고가 일어났다.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가 극심한 요즘, 대형은행의 이 같은 실수는 많은 이를 허탈하게 했다. 사건은 3월 6일 새벽에 일어났다. 광진구청이 한 시민에게 부과한 세금 전자고지서가 76만 개나 중복 생성돼 전혀 연관이 없는 시민들에게 발송된 것이다. 한편 전자고지서에 광진구청 건설관리과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해당 부서는 하루 종일 시민들의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우리은행에서 관리하는 ‘이택스’(ETAX·서울시 지방세 인터넷 납부시스템)의 전산 오류 때문이다. 이택스는 우리은행이 직접 개발해 30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 전자납부 시스템이다. 서울시는 해당 사고를 당일 오전 8시 40분 인지하고 이택스 홈페이지에 사과 공지를 올린 뒤, e메일 수신자들에게 낮 12시쯤 사과 e메일을 다시 보내 ‘오늘 받은 e메일은 시스템 오류로 잘못 받은 것’이라며 ‘아침부터 혼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4시쯤 우리은행은 자사의 실수를 인정하는 내용의 e메일을 다시 76만 명에게 보냈다. 우리은행 측은 e메일에서 ‘이번 장애는 특정 전자고지 1건과 회원님의 e메일 주소가 잘못 매칭 되는 내부적 전산장애에 따라 발송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금고 입찰 앞두고 고민 깊어진 서울시사건 발생 후 많은 이가 개인정보 유출 등에 따른 추가 피해를 우려했으나 다행히 해당 장애는 e메일 주소가 바뀌는 착오만 있었을 뿐, 개인정보는 이용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와 우리은행이 전산 전문가들을 투입해 오류 원인을 파악한 결과 서울시와 우리은행 전산에는 이상이 없고, e메일 발송을 위해 우리은행 측이 사용하는 외부회사의 응용프로그램의 오류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이택스 발송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겠다. 추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외부회사에 대해 정밀조사를 착수했다. 전산시스템 정비는 물론, 해당 인력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은행업계는 이번 사건이 향후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시의 시금고 입찰이 곧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15년부터 100년 넘게 시금고를 맡아온 우리은행의 독점이 과연 유지될지 주목되는 상황이라 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시 금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는 빨라야 3월 중순 이후에나 나올 예정이다. 당초 1월 말에 공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서울시 금고 복수 운영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면서 시의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 담당자는 “입찰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 전산 사고는 추후 원인이 밝혀지면 우리은행으로부터 해당 내용을 보고받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서울시의 한 해 운영 예산은 32조 원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기관 또한 전무하다. 서울시 금고 운영 사업자는 지방세 취급 및 교부금 출납 등을 통한 수수료 수익과 함께 서울시 공무원의 주거래은행으로서 부가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기관영업의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서울시 금고 사업권은 지난 103년 동안 우리은행이 독점해왔다. 경성부금고 시절인 1915년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시금고 지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서울시는 과거 80년가량 수의계약으로 주거래은행을 선정해오다 2000년 행정안전부 지침인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이 바뀌면서 이듬해인 2011년부터 공개입찰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서울시는 여전히 우리은행을 시금고로 낙점했다.


‘뺏으려는 자’들의 눈치 싸움 치열현재 업계에서는 ‘이번 입찰 결과는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은행 독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 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금융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특혜’ 거부감 또한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시금고가 1개인 곳은 서울시밖에 없다. 나머지 지자체는 일반회계를 담당하는 1금고, 특별회계와 기금을 맡는 2금고, 경우에 따라서는 3금고까지 두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 금고 입찰을 앞두고 일부 시중은행은 2금고 선정에 내심 기대를 거는 눈치다. 2금고 예산 규모도 최소 조 단위를 웃돌기 때문에 업계 처지에서는 탐낼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전산 오류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 해도 그동안 우리은행 측이 단일 금고 체계를 주장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바로 ‘독보적인 전산시스템’이었던 만큼 신뢰도에 타격을 입은 건 사실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만약 이번 입찰에서 서울시가 복수 금고를 선정한다면 이는 사실상 우리은행의 패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은 서울시 금고 사수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오랫동안 서울시 금고를 맡아오면서 자금 관리의 모든 노하우를 갖고 있다. 현재 우리은행의 시금고·구금고 전담 인력은 예비 인력까지 포함해 1600명이 넘는다. 전산시스템도 우리은행이 독자적으로 개발, 운영하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 전이다. 전산 업무와 관련해 수십 업체와 협약관계를 맺고 있어 다른 은행과 호환 작업에도 문제가 생길 개연성이 높다. 32조 원이라는 거대 자금을 운영해온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8년 11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