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Me Too)운동’이 지난해 10월 미국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과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틀렸다. 그보다 11년 앞선 2006년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타라나 버크(45)라는 흑인 여성 사회운동가에게서 비롯됐다.
버크는 1997년 열세 살 흑인 소녀로부터 성학대 경험을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제대로 돕지도 못했던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버크는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면 어떤 말을 들려줘야 할 것인가를 오랜 세월 고민하다 ‘나도 그렇다’라는 뜻의 ‘me, too’가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기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돼 있다. ‘나도 너처럼 나쁜 일을 겪어봤다’ ‘네가 느끼는 수치심과 절망에 공감한다’ ‘너의 슬픔과 고통을 더는 일에 나도 동참한다’…. 버크에 따르면 그것은 ‘공감을 통한 권한 부여(empowerment through empathy)’다.
버크는 2006년 뉴욕에서 젊은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비영리단체 ‘저스트 비(Just Be)’를 설립하고 ‘Me Too’ 캠페인에 나섰다. 2007년에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발표하며 가정과 일터에서 성폭력에 취약한 이들 여성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촉구했다. 하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색인종 여성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미투운동은 유색인종 여성이 먼저 시작했는데 평소 자신들의 성폭행 피해에 무관심하던 백인 여성들이 이를 훔쳐가려 한다는 반발이었다. 이에 대한 밀라노의 반응은 신속했다. 10월 18일 버크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은 버크의 캠페인을 모르고 있었다고 사과하며 연대 뜻을 밝혔다. 10년간 자신이 벌여온 운동이 하룻밤 새 도용됐다며 좌절감을 느끼던 버크는 우아한 밀라노의 사과와 제안을 받아들였다. 밀라노는 트위터와 방송을 통해 미투운동의 저작권이 자신이 아니라 버크에게 있음을 밝혔다.
두 사람의 연대를 통해 미투운동은 인종과 국경을 넘어 확산될 수 있었다. 버크는 성추행 희생자에게 생존자(survivor)라는 표현을 쓴다. 무력한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이겨내고 극복한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미투운동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나나 밀라노보다 훨씬 더 크다. 그것은 생존자들을 위한 것이다.”
버크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7년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 중 한 명에 포함됐다. 또 엠마 왓슨 등 여배우들의 초청을 받아 올해 1월 7일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레드 카펫에 섰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