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주여성들과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들이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 회관 회의실에서 피해 여성을 대신해 ‘미투(#MeToo·나도 당했다)’를 외치고 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이주여성 노동자의 성폭력 피해, 한국 정부가 꼭 책임져야 합니다.”
국내 이주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동료를 대신해 ‘미투(#MeToo·나도 당했다)’를 외치고 나섰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전국 이주여성쉼터협의회, 사단법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 회관에서 개최한 ‘이주여성들의 미투’ 토론회에서 이들은 “한국이 필요해 불러들인 이주여성들이니 한국이 책임지고 여성들의 피해를 보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선 본보 기획 ‘이주여성들의 외칠 수 없는 미투’(2월 27일자 A1·5면 등 3회 시리즈)에 소개된 사례를 포함해 곳곳에서 성희롱, 성폭행에 시달리는 이주여성들의 사연이 익명으로 공개됐다.
캄보디아어 통역 봉사자 캇소파니 씨는 국내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성폭행을 당해도 피해를 입증하지 못해 일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캇 씨의 동료인 여성 A 씨는 2016년 취업 비자로 입국해 경기의 한 농장에서 일하다 고용주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A 씨는 용기를 내 고용주를 신고했고 재판이 진행됐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허가제는 성폭행 피해가 입증돼야만 사업주 동의 없이도 직장을 바꿔주는데, 입증이 힘들었기 때문. 캇 씨는 “사업주나 동료가 성폭행을 하면 주변 동료들이 일할 때 불이익을 볼까봐 증언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대구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태국 여성을 상담한 태국 출신 니감시리 스리준 씨는 “국내 태국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태국 여성들 대다수가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다”고 밝혔다. 스리준 씨에 따르면 태국 여성들은 에이전시로부터 3개월 간 한국에서 월 150만~200만 원의 돈을 벌며 마사지를 하다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낯선 한국에 도착하면 외딴 업소에 갇혀 거의 매일 남성 5~7명에게 몸을 팔아야 했다. 스리준 씨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거부하면 업소 사장은 비행기 값과 에이전시 수수료 등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태국 가족에게 성매매 사실을 알리겠다고 위협한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이 자리에서 정부에 △이주여성 성폭력 실태조사 실시 △피해 여성에 대한 체류 권리 보장 △여성 노동자의 피해 신고 즉시 사업장 변경 허용 △외국인 등록자에게 성폭력 피해 지원을 받을 방법에 대한 모국어 자료 제공 등을 요구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한국은 강간죄를 적용할 때 피해자가 증거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어 가해자가 쉽게 무죄 판결을 받는다”며 강간죄 적용이 개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