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A사는 요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근로시간 단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당장 올해 7월부터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해 근로자를 적극 채용하면서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5시간까지 단축해왔다. 이제 200명을 더 뽑으면 52시간에 맞출 수 있지만 간단치 않다. 신규 채용이 여의치 않아서다.
이 회사 정규직 생산직의 시급은 약 8000원이지만 상여금과 수당을 합한 초봉은 3500만 원을 넘는다. 나름 괜찮은 일자리지만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공장이 모두 지방에 있어 청년들이 지원을 꺼리기 때문이다. 어렵게 뽑아도 금세 나가기 일쑤다. A 사 관계자는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몸을 쓰는 생산직에는 청년들이 오려고 하질 않는다”며 “차라리 도시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사표를 내는 청년도 많다”고 말했다.
근로자 330명 규모의 수도권 엔지니어링 업체인 B 사도 7월부터 근로시간을 52시간에 맞춰야 한다. 이 회사의 생산직들은 최근 연쇄적으로 사표를 내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면서 수당이 줄게 되자 월급을 더 주는 곳으로 이직하려는 근로자가 많아진 탓이다.
B사의 경우 퇴직 인원을 보충하고 근로시간까지 줄이려면 30명 이상을 채용해야 하지만, 인건비 부담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우리는 근로자 규모로 보면 대기업이지만 사실상 중소기업으로 봐야 한다”며 “영세업체 근로자들은 임금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이직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A사와 B사와 같은 중견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의 ‘그림자’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0인 이상 대기업으로 분류돼 근로시간 단축이 가장 먼저 시행되지만, 신규채용이 여의치 않거나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많아서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책이 이런 중견기업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 사 관계자는 “청년들이 마음 놓고 생산직에 오도록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던지, 아니면 한시적으로는 중견기업까지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근로시간 단축안이 시행되면 제조업의 인력난이 가중되는 만큼 외국인 고용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달라는 요구다. 현재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외국인근로자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만 고용할 수 있다.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5개 업종만 가능하며 올해는 약 5만6000명 규모다. 도입 인원 역시 정부가 매년 엄격히 규제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청년들이 생산직이나 중견·중소기업에서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게 근본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전체 고등학생 중에서 직업계고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19% 밖에 되지 않는데, 30% 이상까지 과감히 늘릴 필요가 있다”며 “중견·중소기업에 취업을 하면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5년 이상 근무 시 학위를 주는 등의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