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배우 조민기.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 조민기 사망 쇼크가 남긴 것
경찰소환 등 부담…극단적 선택 가능성
선정적 내용 검증 없이 폭로…2차 피해
추모의 글 올렸다 봉변…진흙탕 속으로
상습 성추행 의혹을 받아온 배우 조민기의 죽음이 남긴 충격이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거세게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앞둔 가운데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시각 속에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고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까지 포기해 또 다른 아픔을 남겼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극단적인 선택…또 다른 아픔 남겨
조민기는 A4용지 6장 분량의 자필 유서에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시간들이 지나고보니 회피하고 부정하기에 급급한 비겁한 사람이 됐다”며 “모멸감 혹은 수치심을 느낀 후배들에게 마음 깊이 사죄한다. 이제라도 저의 교만과 그릇됨을 뉘우칠 수 있게 되어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썼다.
그는 사건이 처음 수면에 오른 지난달 20일부터 가족과 주변인을 포함해 대중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물론 연예인으로서 이미지 추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나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내용이 경찰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감당해야 할 부담감과 두려움에 대한 압박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과거 행위가 사실이라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경찰 조사를 통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터였다. 교수라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행위였다는 점에서 여론은 더욱 악화하기도 했다. 몇 년간 말 못할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을 돕자는 움직임 역시 형성됐다.
● 동료·가족에 대한 피해도 우려
하지만 한편에선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그대로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겼다. 빅 이슈가 실시간으로 다뤄지는 과정에서 사안과 크게 관련 없는 내용까지 잇따라 기사화됐고, 그나마도 대부분 자극적으로 채워진 탓이다. 조민기와 그 딸이 함께 출연한 예능프로그램과 연관해 ‘미투’를 거론하는 게 가장 빈번했다. ‘딸과 예능프로그램 출연하던 때 성추행’ 등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연일 온라인에 쏟아졌고, 심지어 아내와 딸의 이력을 살피는 내용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익명 댓글을 통해 폭로된 선정적인 내용도 온라인과 휴대전화 메신저 등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런 경우 대부분 사실 여부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배우 정일우. 동아닷컴DB
조민기가 사망한 뒤 그를 추모하는 연예계 동료들에 대한 무차별적 질타도 이어지고 있다. 동료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다. 과거 조민기와 함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정일우가 개인 SNS에 ‘Pray for you’(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은 뒤 누리꾼은 물론 일부 온라인 매체의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정일우는 글을 지웠다.
한편 조민기의 빈소는 10일 서울 자양동의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12일 오전 6시30분 발인식이 진행된다. 장지는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백솔미 기자 b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