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궁합’의 이승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복귀작 ‘궁합’으로 히트친 이승기
#로맨스
상대배역 잘 몰라도 일단 사랑
닭살 멘트가 내 로맨스 스타일
#군대
군시절 경험이 나를 강하게 해
너무 타서 피부과서 겨우 복원
가수·연기자·예능인 모두가 나
나를 잘 써먹어 줬으면 좋겠다
영화 ‘궁합’이 개봉하고 난 뒤 이승기(31)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졌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으로 활약해왔지만 아직 영화로는 실력을 완전히 증명하지 않았다는 우려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보란 듯이 자신의 ‘전국구 인지도’를 발휘하고 있다. ‘궁합’(감독 홍창표·제작 주피터필름)이 개봉하고 일주일이 지난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승기는 “거의 모든 연령대 관객이 나를 안다는 건 굉장한 힘”이라며 “책임감이 크다”고 했다.
● 로맨스 실력자…“내 영업비밀”
‘궁합’은 혼기가 찬 옹주(심은경)가 자신의 부마 후보를 한 명씩 찾아나서 진짜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이승기는 옹주와 후보들의 궁합을 풀이하는 역술가. 까칠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그는 옹주와 우연히 엮이면서 로맨스를 쌓아간다. ‘닭살 돋는’ 대사와 행동으로 사랑의 감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새롭다. “닭살 돋는다는 평가를 듣는 대사도 있지만, 난 그런 게 좋다. 하하하! 판타지를 워낙 좋아해서인지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가 마음에 든다. 만약 누군가 그런 말을 해준다면 속으론 다들 좋아할걸.(웃음)”
실제 연애할 때도 ‘닭살 멘트’를 애용하는지 궁금했다. “영화에서처럼은 아니어도 살짝 닭살 돋는, 사랑의 말을 한다. 대신 유머를 섞어서 어색하지 않게. 그런 말들 은근히 좋아하지 않나. 하하!”
영화 ‘궁합’에서의 이승기(아래쪽)와 심은경.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사실 이승기는 ‘로맨스 전문’이다. 그동안 출연한 드라마는 물론 ‘궁합’을 포함해 지금껏 주연한 영화 두 편의 장르 역시 로맨스다. 신민아부터 한효주, 수지까지 상대역으로 누굴 만나도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연기자로서 이승기가 가진 최대 강점. ‘궁합’의 심은경과도 그렇다.
덧붙인 말도 흥미롭다. “실제 사랑할 때도 (상대가)처음부터 좋아지는 편이다. 알아가면서 서서히 좋아하는 것보다 처음 느낀 그 느낌을 따른다. 내가 사랑하는 스타일이 좀 그렇다.”
● 군대서 쌓은 에너지…“아직도 꽉 찼다”
이승기는 특전병으로 복무하고 지난해 10월 제대했다. 모범적인 군 복무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널리 알려졌다. 제대하고 4개월이 지났다. “남들은 백일만 지나면 군대 물이 빠진다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며 “방송에서 군대 얘기를 많이 해서 또 하긴 좀 민망하지만,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 좋은 소중한 기억”이라고 이야기를 풀어냈다.
“군대에서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군장 30kg를 메고 400km를 행군할 때였다. 발이 더는 버티지 못해 실과 바늘로 물집을 빼고, 옆의 간부가 여기서 멈춰도 좋다고 하기에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 번 포기한 기억이 있으면 내 한계를 뛰어넘기 어려우니까. 동료 두 명이 내 짐을 나눠 메고, 부축 받으면서 15km를 더 걸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이승기의 얼굴에는 뜻밖에도 2년여 혹독한 훈련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피부가 검게 그을린 걸 빼면 오히려 더 말끔해진 외모다. 비결을 물었더니 “제대 앞두고 휴가 때 피부과를 열심히 다녀 겨우 복원한 게 이 정도”라고 했다. “제대 전 2주 동안 바다 훈련에서 매일 속옷만 입고 해안을 두 시간씩 뛰었다. 너무 검게 타서, 정글로 파병 다녀왔냐고 묻더라. 안 되겠다 싶어서 열심히 관리했다.”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도 변화다. 말수도 부쩍 늘었다. “이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예전엔 내가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예능인인지, 뭘 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그 세 가지가 나를 이루는 정체성이라는 걸 인정했다.”
영화 ‘궁합’의 이승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2004년 데뷔했으니 활동한 지 15년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승승장구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내리는 평가는 조금 다르다. “수면 위로 드러난 고비는 없었지만 한 번 느낄 법한 좌절을 하루하루 나눠 겪은 것 같다”는 이승기는 “칭찬을 많이 받지만 그걸 누리기보다 늘 나의 부족함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정체성을 인정한 지금은 달라졌다. 하고 싶은 일은 늘었고 특히 영화를 향한 의욕이 상당하다. “영화 제안이 여러 편 있지만 거의 주인공이다. 주인공보다 나는 송강호, 황정민 같은 대선배님, 좋은 감독님과 일하고 싶다. 큰 역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분량? 그런 건 정말 중요하지 않다. 뭔가 막힌 것 같은 기분을 뚫어줄, 그런 연기 경험을 원한다.”
이승기는 자신을 향한 ‘편견’도 없애 달라고 부탁했다. “이승기가 거절하겠지? 그런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 이승기를 잘 써먹어 주면 좋겠다. 나는 준비가 돼 있다.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