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제 베이징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한국의 노력으로 한반도 정세에 큰 진전이 이뤄지고 북-미 간 긴밀한 대화가 이뤄지게 된 것을 기쁘게 평가한다”며 “남북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정 실장을 ‘특사’로 보낸 데 대해 높이 평가하며 “(한중은) 정치적 의사소통을 계속 강화하고 전략적 상호신뢰를 공고히 하자”고 했다. 정 실장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왕이 외교부장과도 각각 면담과 오찬·만찬을 함께했다.
중국의 가장 큰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인데도 시 주석을 비롯한 최고위 외교라인이 시간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비상한 관심의 반영이자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한중 간 ‘의사소통 강화’를 강조한 대목도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간접적 메시지로 들린다.
중국은 최근 남북, 북-미 관계의 급진전에 환영과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속내는 복잡하고 불편할 것이다. 그동안 북-미 간 대화를 주선하고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을 맡는 등 적극적 중재 역할을 맡았던 중국이다. 하지만 이번엔 북-미가 중국을 건너뛰고 한국의 중재로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더욱이 김정은 집권 이후 북-중 간에는 정상회담도 없었다. 이른바 ‘조중(朝中) 혈맹’은 과거지사라지만 중국이 북-미 간 직거래를 한가롭게 팔짱 끼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지금까지 세계가 성공하지 못한 대전환의 길”이라며 “우리가 성공해 낸다면 세계사적으로 극적인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북-미 관계의 변화는 분명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질서의 근본적 개편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급속한 정세 변화에 중국도 경계심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과 오랫동안 맡아온 역할을 갑자기 미국이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변화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의 수호, 대화·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중국이 줄곧 내세운 북핵 3원칙의 실현 과정이기도 하다. 마침 중국은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켜 시 주석에게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부여했다. 앞으로 중국이 본격화할 ‘대국(大國)외교’의 첫 시험대는 북한 비핵화를 통한 새로운 동북아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후견 국가를 자처하던 시절은 지났다. 동북아 지도국가로서 새로운 질서를 짜는 데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