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도구적으로 꼭 필요하지는 않으면서도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개인마다 있는데, 가령 내 경우 책을 읽으려고 할 때 꼭 연필을 챙긴다든지 하는 것이 그렇다. 연필이 없으면 책이 안 읽힌다는 건 연필로 책을 읽는 게 아니니까 논리적으로 모순인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계기에 의해 습득되었다가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사소한 습관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걷고 싶지 않거나 잘 걸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자기가 보기 좋아하는 것이면 걷는 게 힘들지 않다. 그럴 경우에는 걷기가 기쁨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노동이 된다. 연필이 있어야 책을 읽는다는 말은 결국 연필로 책을 읽는다는 뜻도 될 것이다. 볼 것이 있어야 걷는다는 말은, 결국 눈으로 걷는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 기준에 의하면, 걷기 좋은 길은 넓은 길이나 잘 닦인 길이 아니고 볼 것이 많은 길이다. ‘볼 것’ 가운데 으뜸은 사람이다. 광장이나 뒷골목을 걷고 싶게 만드는 것도 그곳에 광장이나 뒷골목의 한 부분인 것처럼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때문이다. 비어 있는 광장이나 시장이나 골목이 어딘가 허전하고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 그곳에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풍경이 완성되는 것같이 여겨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프랑스 인상의 첫머리에 나오는 카페 역시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 풍경이라는 데에 다른 의견을 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카페마다 어떤 유명한 이가 자주 찾아와 책을 읽었다는 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엑상프로방스의 유서 깊은 카페 ‘레 되 가르송’은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들른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 한 프랑스 교수로부터 알베르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기 하루 전에 그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내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런 사연들이 아니라 조그맣고 둥근 탁자가 놓인 야외 카페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늘 신기하고 궁금했다. 커피는 그렇다 쳐도, 옹색하기 그지없는 그 작은 탁자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은 꼭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 앉아 밥을 먹는 것처럼 답답해 보인다. 옆자리 손님들과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가까이서, 그러나 부딪치지는 않고 어떻게들 그렇게 오래, 그렇게 쉴 새 없이 이야기인가를 하며 먹고 마시는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길거리 카페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이 거리를 향해 있다. 혼자 온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럿이 온 사람들도 거리를 향해 나란히 앉아 햇볕을 쐬고 있다. 마치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의자가 아예 관객석처럼 배치되어 있다. 거리(무대)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공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볼 것이 되어준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거나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것은 이들이 관객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의사 표현으로 읽힌다. 무대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이 상호 소통하는 열린 연극이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연출된다고 할까.
이승우 소설가·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