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필자가 1월 말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전문가 중에는 국제사회의 제재는 전혀 효과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제재를 거두고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이라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재의 효과를 주장하는 대다수 전문가들도 2018년 하반기 정도 북한의 외환보유액이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을 때 북한이 협상에 관한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런 분석은 김여정 특사단, 김영철 방문 때까지 이어졌다. 북한이 비핵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분석이 이뤄졌다.
그러다 김정은이 북-미 회담을 제의하고 북한이 비핵화 대화 의지를 표명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제재와 압박 때문이 아니라면 북한은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한국 및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을 받아내고 그 대신 현재 핵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동결을 협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해석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북한이 여전히 비핵화에 진정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비핵화 협상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제재와 압박 때문이라면 해석이 보다 쉬워진다. 미국은 그동안 대북 제재 정책이 북한 권력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주목해 왔다. 김정은이 일반 민심의 이반보다 권력층의 분열에 두려움이 높고, 낮아지는 외환보유액이 권력층의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김정은으로서는 외환보유액에 심각한 상태가 오기 전에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과거 북한이 유리한 상태에서 협상에 나설 때 미국과 일대일로 협상했지만 이제 제재와 압박으로 협상의 지위가 낮아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및 대화 제의로 미국의 제재 효과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이 아니라 압박 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믿고 있다. 다만 아직 북한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해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확인하지 못하면 미국이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만이 북한을 만나봤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말뿐만 아니라 구체적 행동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해야만 앞으로 과정이 순탄하게 이어질 것이다. 북한의 보도를 보면 북한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비핵화를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미국과 협상 전략을 긴밀히 조율해 북한이 협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