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비핵화 외교전]정의용, 시진핑 등 7시간 연쇄회동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오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정의용) 특사를 중국으로 파견해 소통하도록 한 것은 중한 관계에 대한 중시를 보여준 것이다.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5시(현지 시간)부터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푸젠팅(福建廳)에서 35분가량 정 실장과 만나 문 대통령 특사대표단의 방북 및 방미 결과를 전해 듣고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시 주석 등 중국 측은 정 실장을 “문 대통령의 특사”라고 표현했다. 시 주석이 첫 발언부터 문 대통령의 정 실장 파견에 감사의 뜻을 나타낸 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남북, 북-미 대화 국면에서 중국이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 양회 중 정 실장 만난 시진핑
중국의 가장 큰 정치행사로 꼽히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 주석이 정 실장을 만난 것은 주목된다. 그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국내 정치행사 때 외교 일정을 거의 중단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이례적으로 정 실장을 만난 것은 북-미 관계의 급격한 진전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북-중 관계는 최악인 상태다. 북-중 간 고위급 교류가 끊긴 상황에서 시 주석에 대한 김정은의 메시지를 정 실장이 시 주석에게 전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런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국 및 지역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중국의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진행)과 관련국의 유익한 건의를 결합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평화협정은 정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가 필요하다. 중국 배제론(차이나 패싱)이 나오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향후 대화 국면에 중국이 참여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정 실장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은 남북관계 발전으로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중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 고맙다”고 말했다. 런민일보는 정 실장이 중국의 역할에 대해 “한국은 마음속 깊이(衷心)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양제츠 “가장 빨리 와줘 고맙다”
한편 시 주석은 “한중 양측이 정치적 의사소통을 계속 강화하고 전략적 상호신뢰를 공고히 해 민감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함으로써 중한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함께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감한 문제의 적절한 처리’는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한국 측에 요구해온 대목이기도 하다.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 다시 사드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좌석 배치도 도마에 올랐다. 시 주석은 테이블 상석에 앉고 정 실장 일행과 중국 측 배석자들이 마주 보고 앉아 시 주석이 회의를 주재하는 모양새가 됐다. 방중 직전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았던 것과도 대비된다. 시 주석은 지난해 5월 이해찬 특사 방중 때도 이런 식으로 앉아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다. 이전까지는 중국 최고 지도자가 한국 특사와 나란히 앉았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열린다’는 뜻. 중국 ‘후한서’에 나오는 말. 중국 서한(西漢·기원전 206년∼기원후 25년)시대 명궁 이광이 호랑이를 만나게 되자 죽을힘을 다해 활을 쏘았는데, 알고 보니 화살이 호랑이 모양의 바위에 깊숙이 박혔다. 다시 활을 아무리 쏘아봐도 바위에 꽂히지 않았다. 양웅(揚雄)이라는 대학자를 찾아가 연유를 물으니 “호랑이에게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자신도 모르게 바위를 꿰뚫는 집중력을 불러온 것”이라며 “정성소지 금석위개”라고 말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