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험난한 통상환경]미국발 통상전쟁에 ‘다자 방패’ 필요 김동연 “상반기중 가입 여부 결론” 美 재가입 의사-통상환경 악화에 ‘참여’쪽으로 전략 수정 움직임 산업부 “가입하려면 美보다 빨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상반기(1∼6월) 중 CPTPP 가입 여부에 대해 부처 간 합의를 도출하고 (합의가 이뤄지는 대로) 통상절차법상 국내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 일본 주도의 경제협정 가입 추진
CPTPP는 당초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후속 명칭이다. TPP는 2015년 10월 타결된 뒤 2016년 2월 공식 서명까지 끝난 뒤 각국은 국내 비준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1월 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TPP의 운명은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TPP는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일본 주도의 치밀한 외교 노력으로 CPTPP로 되살아났다. CPTPP는 TPP 협정문의 95%를 유지하되 지식재산권 등 민감한 조항들에 대해 관세철폐를 미루면서 TPP보다 느슨한 형태의 경제 블록이 됐다. 8일 협정문에 공식 서명을 마친 데 이어 내년 상반기에 협정이 발효될 예정이다.
○ ‘경제블록’ 간 무역전쟁에 대비
CPTPP 11개 회원국은 인구 5억 명에 국내총생산(GDP) 기준 전 세계 13.5%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세계 3위의 경제블록이지만 미국이 협정에 복귀하면 GDP 비중이 37.4%로 올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현재 협상 중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올 들어 두 차례나 CPTPP 가입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 미국과 FTA 개정 협상을 비롯해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철강 제품 관세 예고 등 연이은 통상 갈등을 겪고 있다.
정부는 부처 간 합의가 끝나면 하반기(7∼12월)에 공청회와 국회 보고를 거쳐 공식적으로 CPTPP 참여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높다. 이어 11개 회원국과 개별 협상을 거쳐 절반 이상의 국가에서 찬성표를 받아내야 한다. 산업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참여가 확정되면 여러 국가가 한꺼번에 가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해 CPTPP의 1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 “협정 가입 미루지 말라”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FTA뿐만 아니라 다자 협정에도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전략에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CPTPP 같은 다자 협정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국면에서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하는 데 유용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면 가뜩이나 심각한 대(對)일 무역적자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통상전쟁에 대응하려다가 자칫 일본산 정밀기계나 화학재료에 수출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CPTPP의 단점보다 장점을 볼 시점”이라며 “CPTPP 규정 가운데 한국이 수출에 활용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은 만큼 협정 가입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세종=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