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관왕 도전’ 美 스노보더 허커비
12일 강원 정선 평창 겨울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장 스탠딩 관중석 뒤편에는 볼에 반다비 스티커를 붙인 한 꼬마가 신나게 스노보드를 타고 있었다. 엄마 브레나 허커비(22·미국)의 일터에 따라온 딸 릴라였다. 릴라와 놀아주던 할머니는 “얘가 엄마랑 잡지에도 나왔다”며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보여줬다. 5월이면 두 살이 되는 릴라는 엄마가 출전하는 대회에 따라왔다가 생후 8개월 처음 스노보드에 올랐고 이제는 혼자서도 제법 능숙하게 스노보드를 즐긴다.
이날 생애 첫 패럴림픽에서 스노보드 크로스 LL1(중증 다리 장애) 금메달을 딴 허커비는 릴라를 품에 안은 채 “계속 도전을 하면서 릴라에게도 ‘원하는 모든 것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웃었다.
8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소였다. 2010년 11월 18일, 허커비는 몇 시간을 울고 있었다. 14세 어린 나이로 암 판정을 받은 뒤 9개월간의 항암치료에도 외려 오른 다리 종양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의사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다리를 잘라내야만 한다고 했다. 체조선수를 꿈꾸던 10대 소녀는 다리 절단이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운동선수에게 두 다리는 필수일 것 같았다.
“사는데 두 다리가 있으면 편하겠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랬다면 내가 만난 멋진 사람들도 못 만났을 거고, 세계를 돌아다닐 기회도 없었을 거고, 이렇게 행복하지도 않았을 거다.”
허커비는 16세 때 암센터에서 재활 프로그램으로 유타주 파크시티에 스키여행을 갔다가 처음 스노보드를 탔다. 그의 어머니는 스노보드로 패럴림픽에 도전해보겠다는 딸을 위해 아예 유타에 직장을 얻고 함께 이사를 왔다. 그렇게 패럴림피안의 꿈을 꾼 지 5년 만에 허커비는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출산으로 공백기가 있었지만 엄마가 된 허커비는 더 강한 스노보더가 됐다.
정선에서 휘날린 허커비의 보랏빛 머리는 깔맞춤한 보랏빛 의족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평창 패럴림픽에 맞춰 팀 동료 마이크 슐츠가 만든 ‘평창 브레나 허커비 한정판’ 의족이다. 평소에도 늘 의족을 드러내놓고 생활하는 허커비는 “보라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정말 멋있지 않냐”며 웃었다. 허커비는 “사실 예전에는 의족을 드러내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을 낳으면서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딸은 내가 내 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허커비는 패럴림픽 선수 최초로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잡지에 수영복 모델로 나섰다. 모델 발탁 소식을 듣고 허커비는 방에서 펄쩍 펄쩍 뛰었다.
허커비는 16일 뱅크드 슬라럼(기문이 있는 코스를 회전하며 내려오며 기록을 겨루는 경기)에서 경주)에서 대회 두 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정선=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