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에어 모의 운항훈련 체험해보니
지난달 23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 운항훈련센터. 항공기 머리 부분만 잘라 놓은 B777-200 항공기가 놓여 있었다. 조종사들이 모의 운항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운항 시뮬레이터로, 실제 항공기 조종석과 동일한 형태와 시설을 갖췄다.
이날 기자와 함께 모의 운항훈련을 한 진에어 장병노 기장은 “9·11테러 이후 조종석엔 일반인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데, 시뮬레이터지만 실제 조종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의 운항훈련의 시험 종목은 ‘저시정 상황(안개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안개가 잔뜩 끼어서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항공기의 계기판만 보고 이착륙을 할 수 있는지를 평가했다. 기장과 부기장이 비행기 상태를 체크하면서 “로저(roger·상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하는 말)”를 몇 번 주고받더니 이륙 준비를 끝냈다. 훈련 교관이 “진에어 77”이라고 항공기 이름을 외치자 시뮬레이터 화면에 실제와 동일한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짙은 안개가 깔린 모습으로 시현됐다. 활주로 가시거리가 175∼250m 정도였다. 이를 CAT-Ⅲa(캣스리알파) 상태라고 부른다.
진에어 장병노 기장(왼쪽)과 본보 변종국 기자(오른쪽)가 모의 운항훈련 시뮬레이터에 앉아 운항 훈련을 하고 있다. 실제 항공기 조종석과 똑같은 시뮬레이터에서는 저시정, 천둥, 비, 눈 등 다양한 조건에서 운항 훈련을 할 수 있다. 진에어 제공
진에어 77이 활주로에서 가속을 했다. 비행기가 하늘로 각도를 높였다. 몸이 좌석으로 쏠렸다. 실제로 비행기를 타는 느낌이었다. 밖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를 뚫고 오르니 맑은 하늘이 보였다. 이때부터는 ‘오토파일럿(자동비행장치)’ 기능을 켜고 운항을 했다. 다음은 CAT-Ⅲa 상태인 인천국제공항에 착륙을 하는 훈련이었다. 화면 멀리에 공항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했다. 그런데 갑자기 교관이 “CAT-Ⅲb(캣스리브라보)”를 외쳤다. 갑작스럽게 안개가 더 끼어서 가시거리가 75m밖에 안 되는 상태로 바꾼 것이다. 장 기장과 황석운 부기장은 다시 고도를 올렸다. 운항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곧바로 착륙을 하면 안 된다. 안전한 착륙을 위한 고도로 다시 돌아갔다가 착륙을 해야 한다. 만약 CAT-Ⅲa 자격밖에 없는 항공기와 조종사가 CAT-Ⅲb 상태인 공항에 착륙해야 한다면? 그 비행기는 착륙을 해서는 안 된다. 인근 공항으로 회항을 해야 한다. 가시거리 75m 안개는 평소에 경험해보지 못한 안개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장 기장과 황 부기장은 활주로에 켜진 불빛 신호만 보고 무사히 착륙에 성공했다.
기자도 직접 비행기 이착륙과 운항을 해볼 수 있었다. ‘포워드 트러스트 레버’(엔진 출력을 조절하는 장치로 자동차 액셀러레이터의 기능과 비슷)를 잡고 비행기 속력을 높여 이륙을 시도했다. 모의 훈련이었지만 너무 긴장했는지 장 기장은 “부드럽게 조종을 해야 한다.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수동으로 비행기를 몰아봤다. 조종간(핸들)이 자동차 핸들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좌우로 너무 틀지 않고 고도와 수평 상태를 잘 맞춰 가며 운항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갑자기 빨간 비상 경고등이 켜지고 “엥∼ 엥∼” 하는 경고음이 들렸다. 조종간도 마구 떨렸다. 조종에만 신경 쓰다 보니 비행기 속도가 너무 낮아져 경고가 난 것이다. 실제였으면 큰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다.
진에어와 대한항공은 1년에 2회 모의 훈련을 실시한다. 어떤 위기 상황인지 조종사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저시정뿐 아니라 버드스트라이크(조류가 비행기와 충돌하는 상황), 천둥, 비, 눈, 바람 등 다양한 운항 조건에 맞는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비행기 운항 자격을 박탈당한다. 1만70시간의 비행 경력을 보유한 장 기장은 “베테랑들도 비행기를 몰 때면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