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열여섯 살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을 때,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 주둔하던 캐나다 병사였던 아버지는 아내에게 돌아가고 없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부재 그 자체였다. 그는 어머니를 누나로 알고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아홉 살 때 그 사실을 알고 바위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40여 년 후, ‘아버지의 눈’이라는 노래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의 나이 쉰세 살 때였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아버지의 눈을 볼 때/내가 그를 어떻게 알아볼까?” 절망스럽다. 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몰라볼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자식(“묘목”)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자신의 핏속에서 내내 “함께 있었다는 것을/조금씩 깨달았다”. 함께 있었다면 아버지의 눈도 당연히 ‘보았을’ 터이다. 아버지의 눈을 본 적이 없음에도 ‘보았다’고 말하는 역설이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슬픈 노래다.
그런 그가 2013년부터 그 노래들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상실의 감정’ 없이도 그 노래들을 부를 정도로 초연해졌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초연함이, 그러한 감정과의 작별이 왠지 더 짠하게 느껴진다. 그것도 상처의 흔적일 테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