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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하나?

입력 | 2018-03-14 03:00:00


해외에 안장됐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애국선열의 유해 봉환식.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부자가 3대 못 간다’거나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1대에서 시작한 사업 혹은 과업은 3대에 이르면 결론이 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번 돈을 손자가 까먹고 만다는 속설은 부의 대물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때문에 손자대까지 망한다는 속설이다. 우리 사회에서 망령처럼 떠돌고 있는 이 속설은 우리 국가관과 애국심마저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을 정도다.

조손(祖孫) 3대를 인과관계로 연결하는 식의 속설은 한국인의 풍수적 정서와도 무관치 않다. 이를테면 조부모의 음택(묘)은 손자대, 특히 유전적 친연성이 강한 자손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고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풍수 용어로는 동기감응(同氣感應·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함)이라고 한다.

얼마 전 ‘4대에 걸친 독립운동가’라는 진기록을 보유한 독립운동 가문의 민영백 민설계 회장(76)을 만났다. 그는 가족사와 관련된 풍수적 체험을 얘기했다. 외증조부 신용우(구한말 의병장)-외할아버지 신규식(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아버지 민필호(김구 주석 판공실장)-매부 김준엽(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가문의 독립운동사는 비장하면서도 화려했다.

특히 예관 신규식 선생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예관은 슬하에 외동딸(신명호)만 두고 1922년 상하이에서 절명했다. 예관을 모시던 민필호 선생이 예관의 외동딸과 결혼해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중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떠도느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당시 해외의 독립운동가 자손들 대부분이 그랬다.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민 회장 역시 자수성가했다. 국내 1세대 건축 설계사로 성공했지만, 독립운동가 자손이라는 명예는 출세와 무관했다. 그 대신 “우리 형제자매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는 짤막한 말로 그때를 회고했다.

이후 민 회장은 집안 어른으로부터 ‘외손봉사(外孫奉祀·외손이 외조의 제사를 모시는 일)의 명’을 받아 외할아버지를 추념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고 한다. 그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이듬해인 1993년 8월,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가 유해 5기를 국내로 봉환하는 일에 참여했다. 상하이 창닝(長寧)구 쑹칭링(宋慶齡) 능원에 안치된 외할아버지(신규식)의 유해를 모셔오기 위해서였다. 민 회장은 파묘한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유해가 모셔진 곳은 흙이 질척질척할 정도로 수맥에 노출돼 있었고 유해는 거무튀튀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만국공묘(万國公墓·쑹칭링 능원의 원래 이름)에 모신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 아파하셨다.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현장에 계셨던 어머니는 묘 터가 물구덩이임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할아버지 유해 상태를 확인하고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나마 예관의 유해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다른 4기의 독립운동가들 유해는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 박은식, 김인전, 노백린, 안태국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는 정안사공묘(靜安寺公墓)의 외국인 묘지에 안치된 채 방치되다시피 했다. 1950년대 상하이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정안사공묘가 교외로 이전하면서 이곳으로 이장됐다. 이 5기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서울현충원의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안치돼 있다(후에 3기의 유해가 추가로 봉환됨).

현재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쑹칭링 능원의 외국인 묘역(外籍人墓園)에는 모두 10여 기의 한국인 묘지가 있다. 임계호, 조상섭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의 묘지도 있다. 이미 국내로 봉환된 독립운동가의 경우 표석으로 그 매장돼 있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풍수로 볼 때 이 터의 땅기운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능원 북쪽의 외국인 묘지 중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이곳은 수맥파는 물론이고 지기(地氣)가 교란돼 살기가 뻗치고 있었다. 일부 애국지사들이 바로 그런 곳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이국에서 한스러운 생을 마감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명당은커녕 변변찮은 터에 매장돼 있기 십상이다.

죽어서도 편안하게 영면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과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을 후손들을 위해 국가는 보상을 하는 게 책무일 것이다. 다행히 올해부터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지원 범위를 확대해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해외 곳곳에서 방치된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찾아내 하루속히 국내에 안장하기를 촉구한다. 그게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망령스러운 속설이 완전히 사라지는 풍수적 ‘비책’이라고 본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