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펴낸 소설가 한승원 “한강, 나를 뛰어넘어 진짜 효도… 가을 출간 장편소설 내용은 비밀”
한승원 소설가가 붓으로 ‘광기(狂氣)’를 쓴 후 들어보이며 “미쳐야 성취할 수 있기에 서재 벽에 붙여 놓고 산다. 후배 작가들도 원고 청탁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원고를 보내고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불광출판사)를 출간한 한승원 소설가(79)는 산문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산문집은 유년기, 젊은 날의 추억과 함께 1996년 고향인 전남 장흥군의 바닷가로 내려가 자연과 호흡하며 글을 쓰는 과정, 노쇠해 가는 육체를 마주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13일 열린 간담회에서 한 씨는 “의지가 약한 남자 아이가 늙음에 이르기까지, 운명이라는 바위를 짊어지고 시시포스처럼 산 정상으로 올라가려 애써 온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젊어서부터 서재에 ‘광기(狂氣)’를 한자로 써 붙여 놓고 지내왔다고 했다.
지난겨울 독감으로 입원하며 호되게 고생한 그는 책 뒤에 ‘병상일기―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주는 편지’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슬픈 눈빛을 강조한 이유에 대해 “슬퍼졌을 때 비로소 차갑고 냉엄하게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뚫어보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딸인 소설가 한강(48)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환해졌다. 마침 이날 ‘흰’으로 딸이 또다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흰’을 보니 강이의 생각과 제 생각이 일치하더라고요. 이번 산문집에도 ‘흰, 그게 시이다’는 글이 있는데 하얀 존재들에 대해 썼거든요.”
그는 딸의 문학작품에 대해 “환상적이고 리얼리즘이면서도 신화적인 데 뿌리를 두고 있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강이의 작품을 읽으며 공부를 더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우리 나이로 올해 팔순이다. 잔치를 하고 싶지만 아내가 여행을 가자고 해 그에 따르기로 했단다. 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 온 그는 올해 가을 장편소설도 출간할 예정이다. 내용을 묻자 장난스레 웃으며 “비밀이다”라고 했다. 원고는 다 썼지만 고치는 작업을 거듭하고 있다.
“돌아보니 저는 늘 길을 잃었고 다시 찾기를 반복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중요한 건 계속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