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1896∼1948·사진)은 일본 유학파 여류 화가이자 작가로서 봉건적 억압과 가부장권에 맞서 싸운 신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신랑신부’라는 제목과 함께 본인과 신랑의 사진을 실은 1920년 4월 10일자 동아일보 3면의 광고는 한국 최초의 공개 결혼 청첩장입니다. 나혜석은 1934년에 ‘이혼 고백장’이라는 글을 ‘삼천리’에 발표하며 가부장적 속박을 비판합니다. 그녀의 말과 글, 그림은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나혜석은 전근대 사회에 살면서 근대를 넘어 현대의 젠더(gender) 해방을 꿈꿨던 신여성입니다.
지난주 ‘세계 여성을 날’을 맞아 여러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3월 8일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해 1975년 유엔에서 공식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굶지 않기 위해 하루 12∼14시간씩 일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습니다. ‘미투’ 앞에 유력인들이 추풍낙엽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나혜석은 무슨 말을 할까요. 남녀가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며 소통하는 생활세계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여성들의 말과 글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