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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건 전문기자의 아날로그 스포츠] 프로는 내부갈등도 승리로 치유한다

입력 | 2018-03-15 05:45:00

동료끼리 불화가 있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 우승을 위해서는 내부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프로농구 남자부 DB는 두경민 때문에 내홍을 겪기도 했지만 정신적인 지주인 김주성의 다독거림과 코칭스태프의 현명한 선택으로 올 시즌 6년 만에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우승 확정 후 환호하는 김주성. 원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두경민 끌어안은 ‘DB의 팀 케미’

프로의 세계에서 경쟁·투쟁심은 제2의 천성
그래서 승리·보상으로 다져진 내부질서 중요

말도 안했던 전설의 키스톤 콤비 팅커-에반스
멱살잡던 본즈-켄트도 경기땐 먼저 하이파이브


얼마 전 프로농구 원주 DB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선두를 달리던 팀의 에이스 두경민과 관련된 얘기였다. 각자의 입장과 얘기가 달라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부분들을 종합하면 어느 조직에나 있기 마련인 내부갈등이 두경민에 의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DB는 한동안 심한 내홍을 겪었지만 다행히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상범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구단도 선수들끼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다행히 DB 선수들도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잘 봉합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감정의 앙금은 남았겠지만 밖으로 문제를 확대재생산 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DB의 정신적 지주 김주성은 우여곡절 끝에 두경민이 동료들과 화해하고 팀에 복귀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하자 “우리 팀의 MVP는 두경민”이라고 했다. 이 말이 립서비스일지 진심일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두경민과 선수들은 동료로서 서로를 다독이면서 미래를 향해 가겠다”는 선언이라고 기자는 해석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훈련 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아마추어는 우승을 위해 뭉치고 프로는 우승으로 뭉쳐진다

팀케미스트리. 스포츠팬들의 자주 듣는 단어다. 보통의 팬들은 팀 동료들끼리의 관계가 생사를 함께 겪은 전우들처럼 끈끈하고 이타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도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물리적, 화학적 결합 같은 낱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우승을 위해 뭉치고 프로는 우승으로 뭉쳐진다”는 말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 스포츠 격언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나왔다.

여자하키 단일팀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팀 구성원이 바뀌는 큰 변화를 겪었다. 정치논리에 따라 남과 북의 선수들은 억지로 한 팀이 됐다. 그동안 살아온 문화와 체제가 다른 선수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직력을 다지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고 그 과정 속에서 발행하는 갈등의 요소를 줄여가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큰 문제였다. 세라 머리 감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하나의 목표를 제시했다. “라커룸에서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링크에 나가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면서 사명감을 내세웠다. 비록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해 예선탈락 했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씨앗이 되고 잘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선수들을 자각시키고 원팀이 되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남북의 선수들이 작별할 때 흘린 눈물을 보면 팀 케미스트리를 만들어가는 치열했던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이처럼 하나의 목표를 향한 열정으로 팀워크를 다질 수 있지만 프로페셔널은 다르다. 함께 우승에 도전하지만 성적에 따라 각자의 몸값이 정해지는 프로스포츠의 세계는 철저한 개인중심의 사회다. 9회말 무사만루의 역전 기회에서 대기타석의 타자는 타석의 동료를 응원하면서도 자신이 그 상황을 끝내는 주인공이 되기를 더 원한다. 그래서 팀 내부의 결속력, 물리적 화학적 결합이 더욱 필요하다.

최고의 앙숙이었지만 코트에선 최고의 콤비였던 코비 브라이언트-샤킬 오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경기장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는 그들이지만

팀 스포츠는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 상대를 이기는 것이지만 선수들은 그에 앞서 팀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겨 내가 주인공이 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경쟁과 투쟁심은 선수들에게 제2의 천성이다. 이런 선수들이 모인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위계질서다.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뿐이듯 팀은 구성원들의 위계질서가 명확해야 좋다. 이 교통정리의 원칙이 명확하고 누구나 인정할 만큼 합리적이라면 그 팀은 큰 문제없이 잘 돌아간다.

많은 훈련과 실전의 승리, 풍족한 보상을 통해 다져지면 내부질서는 팀의 문화로 자리를 잡는다. 전통의 명문 팀일수록 이런 문화가 잘 남아 있다. 간혹 개성강한 선수가 기존의 질서를 깨려고 하지만 전통의 힘은 무시하지 못한다. 경쟁으로 다져진 프로페셔널 선수들 모두가 잘났기에 간혹 의견충돌도 생기겠지만 이들은 합리적인 행동과 내부규율을 통해 팀 케미스트리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팀 케미스트리가 나쁜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는 없다. 잘 나가던 팀이 갑자기 곤두박질친다면 먼저 팀케미스트리를 살펴봐야 한다.

제프 켄트-배리 본즈(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신화와 실상은 달랐던 대표적인 그들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시(詩)로 남은 선수들이 있다. 최초의 10만 달러 키스턴 컴비였던 팅커∼에반스∼챈스다. 선수들의 이름이 라임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시카고 커브스의 전설이다. 3명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팅커와 에반스는 메이저리그 초창기 가장 아름다운 병살플레이를 했던 키스턴 컴비로 유명했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이들은 같은 팀에서 플레이하는 동안 그라운드 밖에서는 단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는 관계였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만드는 병살플레이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뉴욕 양키스의 MM컴비로 전설이 된 로저 매리스∼미키 맨틀도 팬들의 상상만큼이나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동료지만 서로를 향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낸 사례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와 2루수 제프 켄트였다. 2006년 10월 두 사람은 더그아웃에서 서로를 욕하면서 멱살까지 잡았다. 더 웃기는 것은 두 사람이 치고받기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본즈가 3점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켄트도 앞으로 나가서 하이파이브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향한 불만을 경솔하게 드러냈지만 팀 동료로서 해야 할 역할은 프로페셔널답게 잊지 않았다. 경기 뒤 그 해프닝을 놓고 취재진들이 많은 질문을 퍼부었지만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사건은 해프닝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갔다. 이번에 우여곡절을 겪은 원주 DB도 비가 온 뒤의 땅처럼 더욱 단단한 팀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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