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석면 잔재물 검사 현장 르포
1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복도에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왼쪽 사진)이 핀셋 등을 이용해 석면 잔재물이 있는지 세심하게 검사하고 있다. 이날 환경단체와 학부모들은 교실 내 칠판 위, 창틀, 에어컨 틈새에 있는 먼지를 채취해 석면이 포함됐는지를 조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12일 오후 2시 서울 A초등학교. 마스크를 쓴 일행이 이 학교 4층 복도의 벽면과 창틀을 플래시를 비춰가며 세심히 관찰했다. 이후 물수건을 꺼내 먼지를 닦아냈다. 하얀색 덩어리가 보이자 10cm 길이의 날카로운 핀셋으로 집어 신중히 살폈다. TV 속 과학수사대(CSI)가 살인범의 단서를 찾는 모습과 흡사했다.
이들은 교실로 향했다. 칠판과 형광등, 에어컨 틈새의 먼지를 닦아냈다. 먼지로 새까매진 물수건은 조심스레 샘플용 채취 비닐에 담겼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교사들에게 물었다. “이 칠판은 고정형인가요? 아니면 떼어낼 수 있는 건가요? 석면 제거공사를 할 때 칠판이나 에어컨을 완전히 떼어내 밖으로 뺀 뒤 공사를 하는 것과 설치된 채 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예요.”
이날 한 교실의 교사 사물함을 밀어내자 바닥에서 하얀 조각이 발견됐다. 핀셋으로 이 조각을 책상에 올려놓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석면이 들어 있으면 잘 안 타요. 석면이 없으면 그냥 종이니 잘 타고요. 석면이든 아니든 석면 철거공사 이후에 이런 조각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죠.”(최 소장)
하얀 조각은 잘 타지 않았다. 최 소장은 정밀검사를 위해 이 조각을 비닐에 담았다. 이 학교 체육관에서도 석면 잔재물로 의심되는 조각이 발견됐다.
석면 제거공사 후에도 학교 안에는 석면 부스러기인 ‘잔재물’이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겨울방학 동안 석면 철거공사를 한 서울 관악구 인헌초등학교 역시 곳곳에서 갈석면과 청석면 등이 검출돼 개학을 미뤘을 정도다. 당시 정부 조사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환경단체와 학부모의 재조사에서 석면이 나와 사회적 논란이 됐다.
석면은 머리카락의 5000분의 1가량 크기로 먼지보다 훨씬 작다. 살짝만 충격을 줘도 공기 중으로 떠올라 24시간 동안 반경 2km까지 날아간다. 석면은 폐에 들어가면 폐포에 박혀 악성종양을 일으킨다. 특히 소량이라도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
mL당 석면섬유 개수가 0.1개인 공기에 1년 동안 노출되면 백석면은 약 10만 명당 1명, 갈석면은 10만 명당 15명, 청석면은 10만 명당 100명가량 악성종피종(악성종양)에 걸린다. 미국 건강영향연구소의 실험 결과 5시간 수업을 기준으로 연간 180일가량 mL당 석면섬유 개수 0.0005개에 노출되면 100만 명당 6명 정도가 폐암으로 사망할 수 있다.
○ 부실한 철거공사 제대로 관리해야
현재 석면 철거 후 정부의 석면 잔재물 검사는 공기를 추출해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석면은 교실 내 창틀이나 에어컨 틈새, 사물함 사이 등에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석면은 나중에 먼지와 함께 공기로 퍼진다.
학교 석면 철거 관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석면 총괄부처는 환경부다. 하지만 석면 철거공사를 발주하는 주체는 교육부, 석면 철거업체 선정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한다. 책임기관이 모호하다보니 공사 및 사후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너무 낮은 석면 철거공사 단가를 적정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석면 철거공사의 관리와 감독, 잔재물 조사 방식을 다시 설계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순천향대 이용진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부뿐 아니라 환경시민단체, 학부모 등이 나서서 석면 철거를 다층적으로 점검하는 한편 부실한 석면 철거업체들의 난립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윤종 zozo@donga.com·김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