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원 논설위원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최근 광고 슬로건. 자유라는, 다분히 미국적 전통에 바탕을 둔 마케팅이다.
1980년대 초반 일본산 모터사이클의 공세에 밀리던 할리데이비슨은 브랜드 정체성을 새로 규정해 돌파구를 마련하기로 했다. 임직원과 투자자, 딜러가 망라된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팀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할리데이비슨은 바이크가 힘, 자유, 개성, 미국을 상징하고 할리데이비슨의 유산, 전통, 신비함을 공유하고 동참하기를 원하는 바이크 팬들을 위해 크고 아름다운 미국산 모터사이클을 제작한다.”(클라이드 페슬러 지음·‘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드 킹’)
EU가 할리데이비슨을 겨냥한 이유는 명백하다. 공화당 서열 1위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지역구(위스콘신주)에 본사와 공장을 뒀기 때문이다. 정치적 압력이다. EU는 2002년 미국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효했을 때도 할리데이비슨에 보복관세를 매겨 이듬해 철회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EU가 강공으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시장 규모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유럽은 할리데이비슨 해외 판매의 42%(약 3만9700대)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지난해 2151대가 팔린 우리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힘으로 안 되면 설득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 통상 문제다. 프로골퍼 그레그 노먼까지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나서 관세면제국이 된 호주의 사례는 부럽다. 일본과 독일도 총리가 직접 통상 현안을 챙긴다.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이라고는 차관급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단신 분투 말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이 정부에서 적폐로 몰려 숨죽이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먼저 나서서 미국 정·관계에 “관세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을까.
사실 미국 지도층과의 네트워크를 따지면 한국에 전경련만 한 조직은 드물다. 전경련은 1988년부터 매년 한미 재계회의를 개최하는 등 미국 오피니언리더들과 전방위로 교류해 왔다. 23일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앞두고 각국이 막판 로비전을 펼치고 있는 요즘은 이 대미(對美) 네트워크 자산을 활용할 적기다. 하지만 정부에 전경련은 여전히 ‘없는 단체’나 다름없다.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힌 통상은 정부만 뛰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결과를 책임질 수도 없다. 재계와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시기에 정부 스스로 적폐 프레임에 갇혀 현안 당사자인 기업 단체를 배제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통상에서의 역설이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