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이정주 신부(51)와 최태지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59)을 만납니다.”(기자)
“아, 그래요? 두 분이 괜찮다면 짜장면 한 그릇 살게요.”(스님)
●발레리나와 스님, 신부
이 신부는 광주 출신이지만 고향 본당 신부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광주가톨릭대 교수와 7년간 주교회의 홍보국장을 지낸 뒤 올해 1월 천주교광주대교구 임동주교좌성당에 부임했다. 10여 년 간 국립발레단 전성기를 이끌어 그냥 ‘최 단장’으로 불려온 최 감독(59)은 지난해 8월 광주시립발레단을 맡아 발레 대중화에 나섰다. 길상사 초대 주지를 지낸 청학 스님과 광주의 인연은 2007년 주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각사는 지난해까지 10년에 걸친 스님의 3000일 기도와 노력으로 광주의 대표적 도심 포교당으로 자리 잡았다.
“연말 ‘호두까기 인형’ 4회 공연이 모두 매진되는 걸 보면서 광주에 발레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최 감독)
“발레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 같은데 많이들 오셨네요.”(이 신부)
●“제가 상무대 군종병 출신입니다”
무각사는 원래 군사 교육·훈련 시설인 상무대 내 군종법당이었다. 상무대 이전 뒤 5·18기념공원 등을 조성했지만 인근 상무 지구는 식당과 술집이 몰려있다.
스님은 “밤에 보면 절 주변이 불야성”이라며 “무각사가 문화적, 정신적인 면에서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 신부의 ‘군대 고백’이 나왔다. “무각사가 군종 법당이던 시절 성당도 있었어요. 제가 거기 성당의 군종병 출신입니다. 하하.” 그러자 스님은 “무각사 군종병이던 스님이 지금 송광사 살아요. 보경 스님인데 무각사 군종병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인연의 수레바퀴는 최 감독의 고향인 일본 교토까지 굴러갔다. 스님은 중창불사 등을 위해 교토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교토 사람들, 자존심 강하고 건축물 다 보존하고 지키고 사는 게 좋아요.”(청학 스님) “저야말로 광주 생활에 흠뻑 빠졌어요. 무엇보다 열심히 배우려는 단원들의 땀과 열정을 보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고 있어요.”(최 감독)
●중생이 아파서 오는 데 잠이 옵니까?
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24시간 개방하는 무각사는 상무 지구에서 가까워 술자리 뒤 절을 찾거나 한밤에 범종을 치는 이들도 있다.
“방 앞까지 와서 소주 드시는 분도 있어요. 스님 처소니 들어오지 말라고 했더니 ‘스님, 중생이 아파서 찾아왔는데 잠이 옵니까?’ 하더군요. 말은 맞죠. 종 치는 사람을 말렸더니 ‘스님, 이거 다 신도들이 시주한 것 아니냐’고. 그것도 맞는 얘기고…. 하하.”(청학 스님)
이 신부는 “신자들과 직접 만나는 걸 오랫동안 꿈꿔왔는데 여건이 맞지 않았다”며 “본당에서 신자들을 만나니까 집에 온 것 같고, 사제된 참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 감독은 5월 정기 공연으로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 올린다. “‘유리 선생’이 한국에 와서 작업할 예정입니다. 우리 발레단은 절이든 성당이든 팬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요. 광주에 제대로 된 ‘춤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요, 호호.”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