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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특활비 유용한 朴 前대통령에 배신감”

입력 | 2018-03-16 03:00:00

前국정원장 3인 나란히 법정 출석
이병호 “개인비리 아닌 제도적 문제”
남재준 “특활비 잘못 집행돼 반성”




국가정보원장 재직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뇌물공여 및 국고손실 등)로 구속 기소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71)이 15일 첫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열린 1심 공판에서 “올려드린 돈(특활비)이 제대로 된 국가 운영에 쓰일 거란 기대를 했는데 기대와 반대로 쓰여 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특활비를 받아 기치료나 주사비용, 의상실 운영비용, 문고리 3인방 휴가비 등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난 점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 전 실장의 변호인은 “특활비가 국정 활동에 적법하게 사용될 것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고도의 정치적 활동을 위해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정원을 지휘·감독하는 대통령과의 관계에 비춰 보면 국정원에 배정된 특활비의 일부를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청와대에 지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실장과 함께 이날 법정에 나란히 선 남재준 전 국정원장(74·구속 기소), 이병호 전 국정원장(78) 등 3명은 국정원장 재임 시절 총 36억5000만 원의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특활비 전달은 인정하면서도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준다거나, 국정원 사업 목적 이외에 사용해 국고를 손실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원장은 “제가 부패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장이 됐다면 제가 아닌 그분이 아마 이 법정에 섰을 것”이라며 “개인 비리 문제가 아니고 오랫동안 미비한 제도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터리 나라면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치는 나라이겠냐”며 혐의를 부인했다.

남 전 원장 측 변호인은 “국민께 실망감과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자 한다”며 “결과적으로 특활비가 잘못 집행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은 이날 직접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