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정치부 차장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벌써 세 살 되시던 때부터 자동차를 운전하시였으며, 여덟 살도 되기 전에 대형 화물차들이 많이 다니고 굽인돌이(급커브)와 경사지가 많은 300여 리 구간의 포장하지 않은 도로를 승용차를 몰고 목적지에 무사히 가신 적도 있었다.’
이런 내용에 북한 학생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복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정보기관조차 김정은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한정부 고위 관계자는 “휴민트(인적 채널)가 예전 같지 않아서 사실 김정은의 행적을 잘 모른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1984년생으로 추정하지만 1989년생, 1981년생 설도 있다. 북한 교과서에선 김정은이 1989년 벌인 자동차 질주를 언급하며 “여덟 살도 되시기 전”이라 적었다.
이런 김정은이 최근 잠깐 수면 밖으로 나왔다. 5일 우리 대북 특사단을 만났다. 조선중앙TV는 면담, 만찬 모습을 10분 50초 동안 전했다. 웃음으로 특사단을 맞고, 일일이 악수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두 손으로 받는 김정은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부 관계자들이 김정은을 만났지만 우리에게 전해지는 내용은 제한적이었다. 그가 정말 한국을 적화통일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생각하는지, 과거 도발에 대해 조금이나마 미안한 감정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대신 청와대 인사들을 통해 “김정은이 상당히 박식하다”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는 평가가 전해졌다. 자신을 ‘셀프 디스’하며 농담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트럼프가 이를 수용하면서 그야말로 ‘통 큰 지도자’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김정은에 대한 정부의 평가도 지금보단 훨씬 자제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구체적인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인상 비평, 그것도 호평 일색의 정부 평가는 남북, 북-미 연쇄 정상회담을 앞둔 시기에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이제 미사일 도발 하지 않을 테니) 문 대통령은 새벽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김정은의 말을 그대로 전한 거다. 김정은 말 하나 믿고 대북 경계태세 와해로 이어질까 걱정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김정은을 고작 한 번 만났다. 아직 그를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냉철한 평가가 쌓여가야 결국 비핵화 타결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김정은 칭찬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