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인생의 판은 빙판입니다. 목표를 향해 경쟁하다가 가끔 미끄러집니다. 컬링 경기는 직사각형 빙판에서 열리는 경쟁입니다. 한쪽에는 동심원으로 그려진 하우스가 인생의 목표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생도 끝없는 전략과 전술과 기술의 복합체입니다. 미끄러운 빙판에 돌을 굴려 하우스 중심을 차지하고 득점하려는 컬링처럼 인생도 목표 성취를 향해 노력을 펼칩니다. 중심을 차지하고 변두리로 밀려나지 않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생 봉사의 삶을 사는 분들에게도 그 일 자체가 인생의 중심입니다.
경쟁의 기회와 규칙이 공정한 컬링에서도 내 돌로 남의 돌을 제거하는, 정 안되면 ‘나도 죽고 너도 죽는 전략’은 정당합니다. 생존경쟁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운동이 또 있을까요. 컬링 경기를 보고 있으면 살아 온, 살아 갈 인생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인생은 발달 단계와 각 단계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의 복합체입니다. 발달은 이정표(milestone)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 단어에도 ‘돌(stone)’이 들어갑니다. 각 단계에는 디딤돌과 걸림돌이 놓여 있습니다. 디딤돌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돌입니다 걸림돌은 반대로 방해가 되는 돌입니다. 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입니다. 가는 길이 멀어도 디딤돌이 많으면 쉽게 걸어가서 윤택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 겁니다. 걸림돌이 많으면 걸려서 넘어졌다가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일어나야 하니 삶이 고단하고 어렵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공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을 찾아 헤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을 힘써 동원합니다. 가족끼리 밀어주기는 개인, 조직, 회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향우회, 동문회도 성황을 이룹니다. 디딤돌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결정체는 지역성 기반의 발언들에 녹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남이가!”입니다.
컬링 전략에서 상대가 쓰는 ‘가드’는 내 인생의 걸림돌입니다. 내가 중심에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돌입니다. 비켜서 돌아가려면 빗질을,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아니면 정면 승부로 쳐내야 합니다. 좌절을 딛고 새 길을 찾으려면 걸림돌을 디딤돌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패럴림픽 경기에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는 말은 늘 맞습니다. 인생은 달콤해야만 한다는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새 길이 보입니다.
디딤돌이 늘 디딤돌일 수는 없습니다. 오래 쓰면 닳고 부서집니다. 점점 많은 젊은이가 부모와 같이 살며 부모를 디딤돌로 씁니다. 이미 성장한 자식은 늙은 부모의 걸림돌입니다. 부모도 사람이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인생 목표를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모는 걸림돌입니다. 부모의 애정이나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형제자매간의 갈등도 컬링의 돌 위치로 풀면 이해가 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중심을 차지하고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컬링 경기장의 고함소리가 인상적이었지요.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이 바람직한 경로와 위치에 진입하기를 소망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의 볼멘소리는 가고 싶지 않은 방향과 자리를 재촉하는 부모에 대한 호소입니다.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줄이면 인생의 득점이 쌓입니다.
가정, 사회, 국가를 위해서는 ‘주춧돌’과 같은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집의 기둥 밑에 놓인 주춧돌은 땅과 집 사이에서 온몸으로 무게를 버텨냅니다. 주춧돌이 없으면 집도 없습니다. 평생 고되게 일하지만 집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멉니다. 없으면 큰일이지만 주변인으로 머물러야만 하는 딱한 처지입니다.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소방관 같은 분들입니다.
컬링 게임에서는 각 팀의 선수들에게 같은 수의 돌이 제공되고 모두 엄정한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 능력이 부족해서 경기를 포기해도 덜 아쉬울 겁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전개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할까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는 마시고 10엔드까지, 끝까지 생각을 신중하게 하면서 최선을 다하시길 권고합니다.
컬링 경기가 비록 가족 간의 경쟁을 연상시키기는 하나 ‘내 가족만 잘되면 되네’ 하는 생각은 좀 버리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가족의 나라’가 아닌 ‘국민의 나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컬링 경기처럼 인생도 공격적으로 또는 수비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대개는 타고난 성격으로 돌리지만 후천적인 전략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너무 공격적으로 덤비다가 실수를 해도, 너무 수비적으로 나가다가 힘도 못쓰고 밀려나도 후회가 밀려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