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명창 박록주의 인간승리
시각장애가 있었지만 판소리사에서 뛰어난 여류 명창으로 평가받는 박록주.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박록주(1905∼1979)라는 명창이 있습니다. 그녀는 판소리사에서 가장 뛰어난 여류 명창으로 평가받습니다. 시각장애를 극복한 인간문화재였으며, 소설가 김유정으로부터 지고한 스토킹(?)을 당한 소리꾼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무려 3년간 구애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김 작가의 집요함은 로맨스와는 어울리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명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 명창은 노름꾼 아버지 손에 끌려 열네 살 때 200원에 권번 우두머리(행수) 기생에게 넘겨집니다. 이른 나이에 좌절감과 배신감부터 배웠습니다. 그가 마약 복용으로 6개월 형을 받은 것도, 자살을 시도한 것도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돈 없는 문학도 김유정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겁니다.
박기홍에게서 배운 ‘대관강산’을 담은 초기 명반. 김문성 씨 제공
박 명창이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던 것 같습니다. 1950년대 중후반까지 활동 이력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1960년에는 폐렴까지 걸리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당당히 극복합니다. 훗날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기 시작한 게 이 시기입니다. 공연보다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고, 1964년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됩니다. 1967년 발매한 ‘흥보가’ 음반이 박 명창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꼽히는 것도 삶의 고비를 잘 넘긴 데서 오는 여유로움이 소리에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1979년 타계하기까지 박귀희 김소희 박초선 박송희 한농선 이옥천 정유진 등 많은 명창을 양성하며 제2의 삶을 살았습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