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현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야간비행을 하다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는 오아시스와 대상(隊商)을 찾아 나선다. 이틀 동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를 80km 가까이 헤맨다. 이 문장은 죽음과 같은 갈증을 느끼며 오던 길로 되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의 외침이다. ‘그건 신기루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신기루를 사랑하고 햇볕의 도시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 기적을 가져오는 희망의 끈임을 보여준다.
방황과 고뇌가 없다면 인간의 삶이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더 이상 물러날 지점이 없는 나락뿐’이라고 주저앉는 절망의 시간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그 시절 이 문장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꺼내 들곤 했다.
오늘도 대지 위 신기루와 도시 불빛이 무한한 생명의지로 다가오는 이 문장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암투병 중인 가까운 고향 선배가 며칠 전 암이 전이됐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국어사전을 곁에 놓고 신문을 읽던 분이다. 더불어 나이 드는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맨 먼저 이 문장이 떠올랐다. 참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있다.
어쩔 때는 나의 사유의 깊이와 경계가 젊은 시절의 그곳으로부터 그리 멀리 와 있지 않다는 부끄러움이 일기도 한다. 공부가 게으른 탓이겠으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진리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대지나 삶의 진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리고 이 문장의 언저리에서 여일하게 서성이고 있는 나의 모자람이 사실이기도 하고….
양승현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