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과 분노/마이클 울프 지음/장경덕 옮김/492쪽·1만7000원/은행나무 시끌벅적한 패배 노렸던 트럼프… 전문가 하나 없이 행정부 꾸려 권력 암투와 미숙함 뒤섞인 백악관과 트럼프 실체 취재
가디언·USA투데이 등에 기사를 써 온 저자가 18개월 동안 트럼프의 측근 200여 명을 취재해 썼다는 이 책에 따르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의 당선 과정은 포복절도하는 이 코미디 영화의 압축판이다. 트럼프 캠프의 목표는 ‘프로듀서’ 제작자들의 것과 같았다. 예상대로 패배하고, 그 패배를 힐러리 탓으로 돌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가 되면 끝이었다. 이방카가 새엄마인 멜라니아를 조롱거리로 삼기 위해 친구들에게 한 말조차 이랬다.
“이 말만 할게. 그녀는 아버지가 출마하면 확실히 이길 거라고 생각해.”
미국 출간 일주일 만에 140만 권이 판매된 이 책의 유명세에는 백악관이 큰 기여를 했다. 백악관이 나서 판매 금지를 거론하자 책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란 기대감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반향이 컸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렇게 웃게 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트럼프를 향해 “빌어먹을 바보 같으니라고”라고 중얼거리는 루퍼트 머독이나 현안에 대해 “그(트럼프)가 이해하고 있나?”라고 반복적으로 물으며 의심하는 우파 언론인 로저 에일스. 배넌의 대답은 더 웃긴다. “그가 이해한 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를 ‘정상적인 사고가 작동하지 않는 어릿광대’로, 그 측근은 오합지졸로 노련하게 희화화시킨다. 그의 표현대로 ‘벽에 붙은 파리’처럼 백악관에 집요하게 드나들며 취재한 끝에 밝혀낸 것은 블랙코미디 주인공으로 완벽해 보이는 한 희극적인 남자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마시멜로 같은 남자”의 실체를 폭로하며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표지 사진으로 골라 넣은 것도 책을 읽고 보니 퍽 의미심장하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어쨌든 이것이 코미디가 아니라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